감천면 `석송령'=자료 예천군
감천면 `석송령'=자료 예천군
  • 예천신문
  • 승인 2010.11.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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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
소재지 : 감천면 천향리 804
주요특색
천향리 석평마을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은 예천에서 풍기 방향으로 10km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제294호로 지정(指定)되어 있다. 이 나무는 부귀(富貴), 장수(長壽), 상록(常綠)을 상징(象徵)하는 반송(盤松)으로, 크기는 수고(樹高) 10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4.2m, 수폭 동서(東西) 32m, 남북(南北) 22m이며, 그늘 면적은 1,000㎡에 이르는 큰 소나무로서 수령(樹齡)이 6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마을의 단합(團合)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신목(洞神木)으로 보호받으며 매년 정월(正月) 대보름에 동신제(洞神祭)를 올리고 있다.

석송령(石松靈)의 유래(由來)는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洪水)가 났을 때 석관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주민들이 건져 지금의 자리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1927년 8월 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란 사람이 영험(靈驗)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소유 토지 5,259㎡를 상속(相續) 등기해 주어 이 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樹木)으로서는 토지를 가진 부자(富者)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재산을 가지고 세금(稅金)을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85년에는 새마을사업을 잘한다고 하여 대통령(大統領)이 준 500만원으로 이 나무의 이름을 따서 장학회를 조직하여 고향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도 주고 있다.

석송령에 얽힌 여러 전설에 의하면

1) 일제시대에 이 나무를 제거하여 민족(民族)의 정기를 말살하고 일본(日本) 군함(軍艦)의 재료(材料)로 활용하고자 일본인이 인부를 동원하여 나무를 베려고 톱과 장비를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석송령 부근의 개울을 건너오는데 갑자기 자전거 핸들이 뚝 부러져 순사(巡査)는 목이 부러져 죽었고, 인부들은 영험스러운 이 나무를 보자 겁에 질려 달아나서 무사했다.

2) 그리고 한국전쟁(1950) 때는 인민군(人民軍)이 석송령 나무 밑을 야전병원(野戰病院) 막사로 사용하였는데 삼천초등학교(三泉初等學校)를 비롯한 인근 모든 지역에는 비행기로 많은 폭격(爆擊)을 받아 피해를 보았으나 우산(雨傘)모양의 이 나무 밑에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아 영험스러움을 다시 한번 증명하였다 한다.

3) 또한 지금도 학질에 걸리면 소나무에 가서 절을 정중히 하고 기도(祈禱)를 드리면 병(病)이 낫는다고 전해진다.

4) 이 소나무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정월(正月) 대보름이나 각종 마을행사가 있으면 1년에 10말 이상을 마신다고 한다. 그것은 한 번에 막걸리 5말씩을 행사 후에 나무뿌리 주변에 살포(撒布)한다.

석송령에서 바라보이는 예천온천(醴泉溫泉)은 2000년 3월 24일 개장하여 하루 천명 이상이 다녀간다. 물 좋기로 소문난 이곳은 중탄산-나트륨(HCO3-Na) 성분(性分)을 가진 알칼리성(PH 9.7~10.25) 단순천으로, 수질(水質)이 매우 부드러워 피로 회복은 물론 여성들의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아주 좋다. 최근 수질검사 결과 북한이 최고로 자랑하는 금강산에 있는 온정리 온천수와 같다는 판정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한다.

●교통이용안내
석송령으로 오는 길은 중앙고속도로로 이용하시는 예천 IC, 영주 IC, 풍기 IC서 내려도 접근이 가능하며 거리는 예천읍에서 감천면 덕율삼거리까지 8km거리에서 온천까지 지방도 931호 선으로 진입, 철로는 경부선을 이용,예천온천과 인접한 곳이다.

●연락처
- 석송령보존회 : 054)654-7616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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