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높은 달'
'1년 중 가장 높은 달'
  • 예천신문
  • 승인 2010.12.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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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10월 상달'
● 세시풍속 이야기(21)
음력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하여 1년 중 가장 높은 달로 여긴다. 민속에서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이다. 이때 각 가정에서는 ‘상달고사’ 또는 ‘가을고사’라 하여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해서 정화수 떠놓고 고사를 지낸다.

주부들의 고사는 집안의 여러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비는 안택고사(安宅告祀)가 주가 된다. 안택은 많은 가신 중에서도 어느 특정한 신에 대한 치성(致誠)이 아니라 모든 신에 대한 총체적인 고사로 1년 내내 가정의 평안과 재액(災厄)을 물리칠 수 있도록 비는 것이다.

고사를 지낸 다음 그릇그릇 떡을 담아 부엌, 장독대, 우물가, 외양간, 변소 등 집안 곳곳에 가져다 놓는다. 이는 집안에 모시는 여러 가신(災厄)에게 고사떡을 바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가족들이 모여 앉아 떡을 먹고 또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예전에는 고사떡(주로 붉은 설기)을 하면 집집이 돌렸으나 요즈음은 가까운 이웃들만 나누어 먹는다. 요즈음 아파트 생활이 주이지만 아직도 이사를 하거나 입택을 하였을 때 떡접시를 돌리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지난 호에서도 이야기가 있었지만 고사에서 주된 가신은 터주(土主), 성주, 조왕의 삼신(三神)이다. 요즈음은 터주를 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도 터줏대감이라 하여 간혹 집안으로 들어가 보면 장독대 옆 터주항아리에 햇벼를 갈아 넣은 다음 짚으로 덮어 놓은 집도 있고, 오쟁이 안에 베 석자와 짚신 따위를 넣어서 달아 두고 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매년 갈아 넣는다.

조왕(?王)은 ‘조왕대감’ 또는 ‘조왕할미’라고도 하는데 가정 주부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부엌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신이다. 즉 취사와 음식물을 관장하는 화신(火神)이다.

조왕은 조그만 항아리나 단지 또는 바가지에 쌀이나 정화수를 담아 신체(神쯜)로 삼고 부엌의 솥 뒤나 부뚜막 한구석에 놓아 둔다.

드물게는 부엌 벽에 창호지를 접어서 걸어놓고 조왕의 신체로 삼는 일도 있다. 조왕에게는 주부가 평상시에도 매일 아침에 정화수(井華水)를 갈아 올리며 치성하지만, 10월 상달에는 조왕단지에 쌀을 갈아 넣으며 집을 떠나 있는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이 밥 잘먹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빈다.

10월 제사에는 시향(시제)을 올리며 이때는 제사에 ‘편’(떡)을 꼭 한다. 이유는 집안이 편하라는 뜻이다. 편은 계피, 팥으로 가루로 만들어 고물로 한다. ‘편’은 기제사 때도 만들어 올리며 편과 조청을 함께 올린다.

시제 때는 탕(湯)만 놓고 탕국은 놓지 않으며 나물도 놓지 않는 집도 있다. 우리가 어릴 적 못살던 시대 문중시사(門中時祀)가 있으면 떡 봉과를 얻어먹으려 학교에서 조퇴하던 기억도 난다. 10월 상달 초겨울이면 집집마다 김장하는 것이 큰 행사이다.

올 같은 해에는 한때 배추 한포기가 만원 이상이 된 적도 있었지만 김장은 예로부터 반양식이라 하였다. 김치, 깍두기, 동치미가 바로 그것이다.

배추와 무를 절인 것에 속을 만들어 고추, 마늘, 소금 등 갖가지 양념을 넣어 버무린 다음 독에 넣고 땅속 깊이 묻는다.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짚을 씌어 마치 작은 움막처럼 김치 광을 만들어 이용하였다.

엄동설한 삼동(三冬) 긴긴밤 마을 사랑방에 놀다보면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김장 잘한 집 김치를 슬쩍 손보아 식은 밥에 줄줄 째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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