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서로 나눠먹음'
'이웃과 서로 나눠먹음'
  • 예천신문
  • 승인 2011.01.03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지팥죽'

◇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 세시풍속 이야기(22)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한다. 물론 동지(冬至)가 들어 있어서이다. 잘 알다시피 동지는 24절기 중 스물두번 째 절기이다. 동짓달에 하는 일들과 풍속이 많이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일이 팥죽을 쑤는 일이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동짓날에는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 또는 수수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에는 자기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는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祠堂)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집안 여러 곳에 한 그릇씩 떠다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지금도 고가나 농촌 토담집에 가면 벽에 뿌린 팥죽 흔적이 벽화처럼 붙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다. 또 까치밥처럼 짐승이나 새 등의 동물들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인간이 베푸는 아름다운 풍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부조(扶助)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사람 죽은 것은 생각않고 팥죽 들어오는 것만 챙긴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 절에서도 죽을 쑤어 중생들에게 나누어 준다. 팥죽을 먹어야 그 해 겨울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귀신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데 이게 다 축귀(逐鬼)의 뜻을 지니고 있다.

동지에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나온다. 당시 공공씨(共工氏)라는 사람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 귀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귀신을 쫓기 위해 하여 동지에 팥죽을 쑤었다는 이야기다. 구리나라에서도 상가에서 팥죽을 쑨 유래가 ‘한국민속대사전’에 나온다.

옛날 몹시 우둔하고 몰염치한 대감이 살았는데 마을에 상사(喪事)가 나기만 하면 상가에 가서 차려놓은 음식을 죄다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마을에서는 상사가 생겨 팥죽을 쑤었는데 ‘어디 팥죽이야 먹을 수 있나?’라며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 사람은 알고보니 사람이 아니라 악한 귀신 곧 ‘멍청이 귓것(귀신)’이었다. 그 귓것은 사람에게 병마를 갖다주는 악귀여서 상가는 물론 동지에도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 먹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동지는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와 조선 초기에 동지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옛날 궁중에서는 동지부터 점점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해 달력을 나눠 주었다.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임금의 도장(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풍속은 단오에 부채를 주고 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 동력‘이라 하였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변하는 현실이지만 동지 팥죽은 세시풍속에서 중요한 웰빙(건강) 식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