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의 효시 「대동운부군옥」'
'백과사전의 효시 「대동운부군옥」'
  • 예천신문
  • 승인 2011.01.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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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대(예천농고5회) ㆍ지보면 소화리 출생 ㆍ부산대 국문과 졸업
소백산 기슭에 한 자락 자리잡고 있으며, 문화유산인 보물 다섯 점을 소장하고 있는 천년고찰 용문사가 고풍스러움을 뽐내면서 자랑하고 있다. 그 사찰이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에 있다. 이 금당실이 금당곡(金堂谷)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유서(由緖) 깊은 고장에 역대 훌륭한 학자들을 배출한 금곡서원(金谷書院)이 있고, 즐비하게 늘어선 전통 고택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옛날 명나라 장수가 금당실을 두루 살펴보고 중국의 양양 금곡(金谷)과 지형이 닮았다 하여 금곡(金谷)이라고도 했다.

연화정수형(蓮花淨水形)이라고도 했는데 마치 연못 속에 연꽃을 상징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의 명당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그 마을 이름을 금당이라고 한 것은 정감록(鄭鑑錄)에 의하면 조선 태조가 이곳을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곳이다. 금당실은 이렇게 국내의 명승지 중 열 손가락 속에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찬란한 불교 문화를 이루고 지켜오면서 빛낸 용문사에는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중 유일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輪藏臺)가 있다. 불자들이 이 윤장대를 두 손 모아 돌리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윤장대에는 수많은 불자들의 손때가 소원 성취를 이룬 수만큼 묻어 있다. 또한 아담하게 건축된 대장전의 지붕 모양은 완각이 잘린 듯이 팔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이것은 정남에서 서쪽으로 15도 각도의 방위, 즉 정방(丁方)으로 정좌(丁坐)하고 있어 그 아담한 자태가 한결 돋보인다.

이 대장전에 모셔둔 목불좌상은 야무지고 단단한 대추나무로 만든 미륵불상과 목각탱(木刻幀))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가장 오래된 부처다.

금당실 전통 마을 근처에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솔밭도 시원하다. 그리고 낙동강 지류인 복천과 용문사 계곡, 청룡사 계곡으로부터 흐르는 계곡류가 만나서 삼각주를 이루는 운치 있는 비경이다. 여기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인 현손이 세운 정자가 초간정이다. 이 초간정은 용문사의 계곡 냇물이 흘러 한 굽이를 꺾는 경치 좋은 곳에 바위가 우뚝 선 그 위에 초간정을 지으니, 그것이 곧 공중에 떠 있는 듯 단아한 자태를 이루고 있다.

선조 22년(1589)에 권문해 선생이 편찬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은 백과사전이다. 이 책을 지은 권문해 선생은 유서 깊은 학문의 고장, 충절의 고장, 인물의 고장 용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조 때 학자로서 학문이 높은 선각자(先覺者)다. 그의 자(字)는 호원(灝元)이고, 호(號)는 초간(草澗)이다. 그는 벼슬이 감사(監司), 즉 관찰사에 이르렀다.

이 백과사전은 원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을 본떠서 지은 책으로 단군으로부터 선조 때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적 사실, 인물, 지리, 예술, 저서 등 2만 개가 넘는 낱말을 운자의 차례로 기재하였다. 이 책이 곧 현대 사전의 시초가 되었다.

조선시대 여러 방면의 유명한 저서는 모두 인용되어서 더욱 높이 평가되며, 당시의 개인 저서로서는 으뜸가는 역작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동운부군옥애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그 당시로 보아 가장 놀랄 만한 저서임에는 틀림없다. 그 당시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갈고 닦고 다듬어 운자(韻字)의 차례를 따라 사전식으로 편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상의 수상(受賞)에다 최고의 훈장(勳章)을 받을 만한 대작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동운부군옥이 새로운 백과사전을 편찬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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