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마감, 새해 준비'
'한해 마감, 새해 준비'
  • 예천신문
  • 승인 2011.01.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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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 달'

◇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 세시풍속 이야기(23)
섣달은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마무리와 준비의 달을 의미한다. 섣달을 납월(臘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납은 마지막의 뜻으로 그 해의 마지막 달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동지후 셋째 술일(戌日)을 납일로 정하여 종묘나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각종 환약(丸藥)을 만들어 바쳤는데 이를 납약(臘藥)이라고 한다.

농가월령가 12월을 보면 섣달의 의식(衣食)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들어 있다.

“집안의 여인들은 설날 새옷 장만하고 무명명주 끊어내어 온갖 물감 들여내니, 가지보다 연노랑빛 검푸른빛 옥색이라. 한편으로 다듬으며 한편으로 지어내니, 상자에도 가득하고 홰대에도 걸었도다. 입을 것 그만두고 먹을 것 장만하세.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갈아 두부(豆腐)하고 메밀쌀로 만두빚소. 설날 고기 계를 믿고 북어는 장에 사세. 그믐 날 창을 놓아 잡은 꿩 몇 마린고. 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밤이라 술단지의 술거르니 돌틈에 샘소린 듯 앞 뒤집 떡치는 소리 여기저기 들려오네.”

옛날 우리네 조상들의 농촌 모습이 그대로 선하다. 납일에는 한해 동안에 지은 농사의 형편과 그 밖의 일을 여러 신에게 고하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납향(臘享)이라 한다. 이 때 제물로는 멧돼지나 토끼를 사용했다. 납에는 사냥한다는 엽(獵)의 뜻도 있다. 이날 산짐승을 제물로 쓰는 것은 천지만물의 덕에 감사하기 위해 사냥해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이다. 자연만물에 제사 지내던 이 행사는 후에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민간에서는 어린아이가 참새고기를 먹으면 마마(천연두)를 깨끗이 한다하여 이날 그물을 쳐서, 또는 소쿠리 목을 놓아 참새를 잡았다. 또 납일에 내리는 눈을 받아 두었다가 녹은 물에 물건을 적셔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 하였다. 그리고 이 물로 눈(眼)을 닦아 눈병을 막고자 했다.

섣달은 한 해가 끝나면서 동시에 새로운 해를 맞는 것이니, 애초 우주가 개벽(開闢)하는 전후의 순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섣달의 행사는 한 해를 마무리해 정리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래서 묵은 바느질을 한다든지, 그 해 일의 끝단속을 한다든지 묵은 빚을 남김없이 청산한다. 그리고 외지에 나가 있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온다.

또 섣달은 한해의 끝인 데서 “섣달 처녀 개밥 퍼주듯 한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시집가지 못한 채 한 해가 끝나니 초조감과 홧김에 개에게나 푹푹 퍼준다는 뜻이다.

요즈음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신세대 처녀들과는 대조적이다. 섣달 납일에 내린 눈을 녹인 물은 납설수(臘雪水)라 하여 살충 해독약으로도 썼다.

납육(臘肉)은 겨울나기 사료를 절약하기 위해 섣달에 잡아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이고 납조(臘鳥)는 약으로 쓰기 위해 섣달 납일에 잡은 참새이다.

섣달은 ‘섣부른 달’ ‘정월이 서는 달’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설이 드는 달’이라는 의미에서 ‘설달’이라고 부르게 되어 ‘섣달’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설달’이 ‘섣달’로 바뀐 것은 ‘이틀+날’이 ‘이튿날’이 되고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바뀐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들은 끝날 때 시작을 생각하는 법이다. 섣달은 한 해를 뒤돌아보고 반성하며 깨닫고 정진(精進)하는 달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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