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한파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구제역 한파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 백승학 기자
  • 승인 2011.01.24 0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 백승학 기자
“야들아! 올해는 그만 됐고 내년에 더 뜻깊게 보내자.”

지난 7일 예천읍 왕신리 노모 할머니는 구제역 때문에 생일상을 받지 못했다.

구제역 확진을 막기 위해 마을 앞길이 콤바인으로 막히고 시내버스가 끊겼으며, 5일장 폐쇄로 인해 장 구경을 간지도 벌써 한달이 훌쩍 넘었다. 외부와의 단절은 가뜩이나 외로운 노인들을 더욱 더 외롭게 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소소한 모임도 참석하고 장이라도 보러 나올 수 있지만 노인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노인 대부분이 몸이 아파도 주위의 눈치를 보며, 병원조차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며칠 전에는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돼 반찬을 장만해 고향을 찾아온 아들이 마을 앞을 막고 있는 마을자체 방역원들과 차량 진입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져 결국 늙으신 어머니를 방역초소 앞에서 보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요사이 두 명만 모여도 한숨이다. 겨울 한파보다 더한 구제역 한파에 상인들도, 농민들도, 지역민 모두 할말을 잃었다. 연일 터지는 구제역 양성 소식은 허탈한 웃음만 나오게 한다.

이대로 간다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도 정월 대보름 윷놀이도 썰렁한 가운데 지나갈 것 같다.

벌써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올 설에는 오지 말라고 한단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 참으로 길고 긴 구제역 한파다.

상인들도, 지역민들도 해바라기 마냥 군의 대책을 바라고 있지만 별 뽀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조금은 흥청거리던 연말연시가 먼 옛적 이야기처럼 아련하다.

하루 종일 개시도 못하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손님을 기다리는 노래방 주인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모두들 마음 편히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 부를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구제역 확산 저지를 위해 총력을 경주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