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도전하는 자가 만들어간다.
역사는 도전하는 자가 만들어간다.
  • 예천신문
  • 승인 2011.01.2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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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모 (용문면 출생/ 대구일보 논설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KBS1라디오 시사논평 진행
4∼5백년 동안 근대 세계를 이끈 유럽의 저력은 16세기 스페인 포르투칼의 항해였다. 지난 가을 ‘땅끝 마을’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있는 스·포를 둘러봤다. 스페인은 가히 콜럼버스(1451∼1506)의 나라이다. 세비야 무리요 공원을 비롯, 가는 곳 마다 콜럼버스의 흔적이 있다.

세계 3대 성당인 세비야 본성당 안에 콜롬버스 묘가 있다. 네 명의 왕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사후이지만 제후의 시종을 받고 있으니 영광중의 영광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콜럼버스는 포르투칼로 이주해 리스본항해학교를 나왔다. 해도(海圖)제작을 하다 당시 동쪽(희망봉 루트)으로 가던 인도를 서쪽으로도 갈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포르투칼 귀족들의 반대로 지원을 얻어내지 못했다.

영국으로, 프랑스로 다니며 후원을 요청했다가 번번히 거절당해 ‘역사는 도전하는 자가 만들어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콜럼버스의 집념에 에스파냐(스페인)왕 이사벨(Isabel)은 자금과 선박 2척, 선원을 모아 주었다. 콜럼버스의 생각 이상의 생각으로 역사는 이루어진다.

콜럼버스는 1492년 항해를 나섰다. 남들이 아무도 안하고 못한 일을 목숨 걸고 추진했다. 결과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성공이다. 노다지도 그런 노다지는 없다. 그가 가져온 금제품이 전 유럽에 불티나게 팔리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다. 이사벨은 자국의 1백50배나 되는 해외 땅을 얻었다. 지금도 세계 6억 명이 스페인 언어와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칼 2개국을 몸으로 보고 새로운 생각을 발견했다. 15세기에 1백년 간 대리석 화강암으로 지은 세비야성당, 고도(古都) 똘레도성당, 그라나다 나자리에 궁전은 모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똘레도 성당은 2백66년 간 만들었는데, 길이 1백20m, 폭 90m, 천장 높이 33m의 엄청난 규모이다. 아름다운 똘레도 성(城)은 강이 에워싸 외적이 침입하기 힘든 천혜의 요새이다. 한 해 3백50만 명의 관광객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몰려온다.

예천이 경북내륙의 ‘뒷방’에 위치해 있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스페인의 서부 내륙의 작은 도시가 성 야고보가 예수의 복음을 전하러 떠났던 먼 여정을 1993년 순례코스(산티아고 가는 길)로 개발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지금은 연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콜롬버스 나라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미국 고고학계는 2007년 알래스카 아막낙 섬에서 북옥저 쪽구들과 고래 뼈 탈을 발굴했다. 탄소측정 연대 3천년쯤이다. 서양이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고대한민족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증거이다. 윷놀이, 지게, 짚신 등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전통 문화 풍속은 우리와 가장 가깝다. 세계사에 영원불멸의 공적을 남긴 콜롬버스보다 6백년이나 앞서 신라의 장보고는 당나라 신라 일본 주변의 해상권을 장악했지 않았나.

유럽열강의 침략으로 짓눌려 살아온 아시아, 즉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는 21세기를 끝으로 저물 것이다. 이제 개울의 미꾸라지가 아닌 바다의 고래를 잡으러 가자. 가수 송창식의 노랫말 ‘고래사냥’ 후렴처럼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세계사의 객체에서 주체로 바뀌는 생각을 하자.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애국가의 시작이 백두산이 아니라 ‘동해 물’이다.

황해를 넘어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진출하여 1천년의 ‘동세서점(東勢西漸)’시대를 열자. 군사력이 아니라 평화민족 답게 왼손에는 한글 문화 학문 사상 정신을 들고 오른손에는 비즈니스를 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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