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풍농, 풍어 기원'
'건강과 풍농, 풍어 기원'
  • 예천신문
  • 승인 2011.03.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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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동신제(洞神祭)
● 세시풍속 이야기(29)

절기상으로는 입춘(立春) 우수(雨水)가 지나 봄이 문턱까지 온 듯하지만 조상들은 기상조건에 따라 아직 늦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음력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시골 마을마다 동신제를 지낸다. 특히 마을이 크거나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지금도 동제(洞祭)를 올리는 곳이 많다.

동신제(洞神祭)를 지내는 목적은 온 마을 사랍ㅁ들이 질병과 재앙(災殃)으로부터 풀려나고 농사가 잘 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하여 달라고 비는 것이어서 건강과 풍농, 풍어로 집약할 수 있다. 동제는 지역에 따라 동신(洞神)의 구체적인 명칭을 들어 ‘산신제’ ‘서낭제’ ‘용신제’ ‘당산제’ ‘당굿’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신제, 일명 부락제(部落祭)는 부락 수호신을 제사 지내어 부락민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데 특히 호랑이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데서도 지켜오고 있다.

산신(山神)의 영험이 높다하여 금기(禁忌)를 엄하게 지키게 하고 남녀노소로 하여금 일체감을 불러 일으켜 사회제도를 굳건한 기반 위에 올려 확고하게 만들어 공동사회의 기능을 살려가고자 한 것이다. 동제의 역사는 문헌기록을 통하여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나 후한서 동이전과 같은 문헌기록을 통해 삼한(三韓)의 제천(祭天) 행사에까지 소급하여 올라갈 수 있다.

이 제천 행사는 봄에 파종시 하늘에 제사하고 가을에 추수하고 나서 하늘에 제사하여 잘 된 농사에 대하여 하늘에 감사하는 국중대회(國中大會)로서 연일 음주, 가무할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규모가 큰 동제와 배교될 수 있다. 동제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아 진행된다. 제일(祭日)은 2월, 10월에 동제를 지내는 곳도 있으나 우리지방에서는 정월 14일 밤에 지낸다.

동제를 지낼 때는 제를 지내기 7∼15일 전에 동회(洞會)를 열어 마을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제관(祭官)을 선출한다. 제관은 나이가 지긋한 원로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서 제주와 집사, 축관을 뽑는다. 제관의 선출이 끝나면 동제당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잡인들의 출입을 막고, 마을 입구에도 같은 방법으로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

제관으로 뽑힌 사람도 그날부터 금기(禁忌)에 들어가 집 밖 출입을 제한하고 언행을 조심한다. 어류와 육류를 먹지 않고 술과 담배를 끊으며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沐浴齋戒)하면서 부부합동도 금하며 출입문 밖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띄엄띄엄 놓아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

제수는 제주집에서 장만하여 집사가 운반하고 제비(祭費)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추렴한다. 제물은 메, 주(酒), 과(果), 포(脯), 탕(湯), 떡(백설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쓰며 제물을 살 때는 절대로 값을 깎지 않는다. 제주(祭酒)로 쓰는 술을 ‘조라’라 하는데 신당부근에 땅을 파고 묻었다가 술을 빚어 사용한다. 제의(祭儀)는 제관만이 유가(儒家)의 제례방식에 따라 초헌, 아헌, 종헌, 독축 소지올리기, 음복 순서로 동제를 마친다.

마을에 따라서는 신당이 여러 곳인 데도 있어 할아버지당, 할머니당, 삼신당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밤날씨가 추운데도 어머니가 동신제 장소에 소지후 남은 종이에 글씨를 쓰면 공부를 잘 한다고 하여 벌벌 떨면서 기다리던 어릴시절이 생각난다.

제사 지낸 이튿날엔 마을 사람들이 제주집으로 모여 회식을 하며 제의비용을 결산하고 마을일을 심의한다. 불참한 동민에겐 제사 지낸 음식을 따로 보내기도 한다. 동제의 이와 같은 절차는 마을 사람들의 의사가 반영된 민주적 방식이요 예부터 전해오는 한국의 전통적인 대동의결(大同議決)의 민주적 기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문화의 보존이란 측면도 있으나 현대문명과 고등종교의 침투로 소멸 파괴되어 가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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