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청풍(百世淸風)의 스토리텔링'
`백세청풍(百世淸風)의 스토리텔링'
  • 예천신문
  • 승인 2011.05.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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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 준 예천읍 출생 시인, 논설위원
함께 근무하는 교직원들과 예천 여행에 올랐다. 마침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교에 우리나라 전통 매화 연구로 유명한 피재호 교수님이 예천에 많은 관심과 예천에 매화 묘목장을 운영하고 있어 예천 여행길에 뜻을 같이 하는 7명의 교수, 직원들과 함께 나서게 되었다.

‘시간이 멈춘 곳’ 예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삼강주막에 들렸다. 낙동강 제방에 올라서니 푸른 강물을 머금은 봄바람이 온 몸 가득 휘감긴다.

이 강바람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가슴이 터져라 맘껏 욕심내 마셔도 누구 하나 욕할 이 없다. 흩날리는 산벚꽃을 두 손으로 받으며 제방공사 구간을 쭉 둘러 보았다. 돌철망을 엮어 쌓고 윗부분엔 관목과 꽃나무들을 심었는데 필자 생각엔 제방공사도 관광지에 이런 천편일률적인 공사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개축하는 제방에는 충효의 고장 예천이나 양반집성촌 삼강마을에 걸 맞는 매화를 대량 식재할 것을 권한다. 피교수 말에 의하면 예천은 매화가 자생할 수 있는 기후, 토양 조건이 알맞다고 하였다. 또한 매화는 충효와 상통하고 관광 상품화할 가치가 충분한 꽃이다.

매화가 만발한 봄철에는 매화축제를 하고, 매실을 따는 여름엔 매실 따기 축제 그리고 매실 상품을 개발하여 4계절 격조 높은 관광지로 거듭 나길 기대한다.

삼강마을은 청주정씨 집성촌으로 영남 사대부가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마침 주막 문짝에 청주정씨 삼강마을 입향조 청풍자 정윤목을 칭송하는 시가 한 수 있었다. 예천군이나 청주정씨 문중에 생각이 있는 이가 있다면 청풍자의 추상같은 말씀이 걸려있는 삼강서원의 百世淸風 현판 글씨를 이곳에 걸맞는 스토리텔링으로 살려내야 할 것이다.

정윤목은 이순신 장군을 살려내어 유명한 약포대감의 3자로 임진란에 부친을 도와 선조를 호종하였고 성격이 활달, 고결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한다. 벼슬을 거절하고 눈내린 날이면 홀로 소백산에 올라 한나절을 보내고 돌아오고 했다니 그 흉중에 담긴 포부가 끝내 아깝다.

그의 시 2수가 여기서 멀지않은 무이리 여주이씨 국창공 이찬의 집에 걸려 있었는데 임진란 때 왜구들이 쳐들어왔다가 그의 글씨를 보고 절을 하고 물러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 삼강서원에 남아있는 그의 글씨 백세청풍은 글씨도 뛰어나지만 그 심오한 뜻을 오늘날 되살려 이 시대의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청풍은 푸른 바람 즉 하늘을 우러러 보나 땅을 내려 보나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마음의 상태이다. 백세 즉 3천년이 지난다고 하여도 그 맑은 정신이 오히려 정정할 뿐이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돈, 권력 그리고 여자관계 등으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흔히 보며 옛 선비의 올곧은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좋은 글을 판각하여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스토리텔링하여 널리 인구에 회자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삼강주막은 주막으로 역할 뿐만 아니라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이 삼강서원에 들러 과거 예비시험을 봐서 서울로 갈 것인지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판단하였다니 과연 이 마을의 위세가 대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은 관광지든 음식점이든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명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百世淸風, 매화와 어울러 예천의 새로운 상징이 되길 기대한다. 이제 제법 관광지로 탈바꿈한 삼강주막, 예천의 마지막 남은 보루(堡壘)같이 느껴져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곳이 명품 관광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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