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고향 가는 까닭은?②
걸어서 고향 가는 까닭은?②
  • 예천신문
  • 승인 2011.08.2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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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인수 전 서울시의원 (용궁면 덕계리 출생)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준 단돈 5백환을 가지고 덜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김천까지 갔던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서울 용산역에 도착하여 자력(自力)으로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등을 다니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옛날 어른들은 “젊어서 하는 고생은 돈 주고도 못산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생활하며 노력한 결과 생활이 안정되었고, 이웃분들의 생활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봉사해온 덕에 우리 서초주민들의 성원으로 서초구의회의원을 거쳐 서울시의원도 역임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내가 한 일이 과연 무엇이었나. 내 나이가 되니 문득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향으로 떠나는 도보여행을 계획하게된 것도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자는 생각이 그 중 하나다.

주로 주말(週末)을 이용해서 그 계획을 실천한다. 한번에 고향 용궁면까지 걸어서 가는 게 아니라 보행자를 막는 터널을 만나면 험한 산길을 더듬어서 저 옛날 사람들이 걸어서 넘었을 그 길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고 목표점에 이르면 그곳에서 버스 등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서 서울로 돌아온다.

음주말에는 그곳까지 다시 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부터 도보여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나의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걷는 길이다. 둘이 함께 걸으니 더욱 정이 두터워지는 느낌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8구간으로 나눠서 하루에 한구간씩을 정해 도보 여행을 한다. 첫날은 성남 그다음번은 광주, 이천, 장호원, 주덕, 충주, 수안보, 문경새재 등 여러 시군을 지나면서 그 지방의 특산물과 명승지를 구경하고, 자연이나 생태환경을 관찰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분들의 순수함과 서울에서 못 느꼈던 정을 확인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 여행을 처음 시작한 날이 5월 10일. 생업관계로 평일에는 일을 하고 일정이 없는 주일에만 보통 7시간정도 걷고 터미널까지 가서 다시 서울 오는 차편으로 상경했다가 주일이 되면 다시 지난번 끝난 지점부터 시작하곤 하는데 벌써 여섯번이 지났다. 7월 24일 현재 문경 제1관문까지 갔다.

비록 몸과 다리 등 육체는 피곤하지만 정신은 날아갈 듯이 가볍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다른 지인들도 우리를 부러워하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해준다.

7월31일을 마지막으로 문경 점촌에서 예천 용궁 덕계리까지의 여행으로 끝을 마친다. 그 많은 예천 출향 인사중 고향까지 부부가 도보여행을 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닐까 싶어 가슴이 뿌듯하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인생은 무소유의 뜬구름 같은 것, 결국은 빈손으로 흙 한 줌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생명이 부지한 순간까지 이웃을 위해 정(情) 나누며 합리적으로 살아가야 될 게 아니겠는가, 그런 느낌이 새삼 절실해진다.

세계적 등산가들이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도 그래보고 싶지만 그것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런 여행이 제격인 것 같다.

전국을 남북으로 세로지르는 3번 국도를 통해 고향까지 도보여행을 하는 5백여리길. 그 길에서 나는 오늘도 정다운 사연을 캐고,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끼리 나누는 정,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느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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