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곡식 도정(搗精)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곡식 도정(搗精)
  • 예천신문
  • 승인 2011.10.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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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아'

◇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세시풍속 이야기(40)
우리는 옛 조상 때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딜방아를 이용하여 곡식을 도정(搗精)하였다. 방아는 곡식을 찧거나 빻는 기구이다. 디딜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 기계방아 등이 있으나 근래에는 대부분 도정 공장이나 가정의 도정 기계에 의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것이 보통이다.

이 중에 디딜방아는 어렵던 시절 중노동이요 한이 맺힌 방아이다. 디딜방아는 민속촌이나 허물어진 농촌옛집, 체험장에서나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가정마다 아래채 옆이나 아예 디딜방아를 위한 건물을 따로 지어 활용하였다.

옛 농구 중 알곡을 내는 도구로는 돌확, 맷돌, 매통, 절구, 디딜방아, 물방아, 연자방아 등이 있다. 방아의 주된 기능은 바수기, 찧기, 갈기, 빻기, 치기 등이다.

디딜방아는 주로 알곡과 가루를 내는데 쓰였고 그 원형은 석기시대의 연석(軟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석은 돌확과 절구의 두 형태로 발전하였는데 절구에서 디딜방아 물레방아 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벽화에도 방아가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사회에서도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디딜방아는 방아와 확(우리 예천 사투리로 호박)으로 이루어진다. 땅을 움푹 파서 홈이 파진 곳에 돌이나 쇠로 만든 절구를 묻어 놓은 것을 확이라고 하며, 방아는 나무로 만들어져 두 다리 또는 외다리로 되어 있다. 디딜방아는 보통 2명이 딛는데 힘이 들 때 또는 오랜시간 디딜 때에는 3사람이 딛고 이 중 한명은 계속 확 속에 곡식을 집어 넣고 관리한다.

넘어지지 않도록 위에서 늘어뜨린 방아줄을 붙잡고 방아를 찧는다.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나 무게를 더하여 방아가 쉽게 올라오도록 젖먹이 아기를 업고 찧기도 한다.

디딜방아는 협동이 잘 되어야 효율성도 높고 힘이 적게 들며 확 앞에서 곡식을 다루는 사람은 공이와 확의 사이에 손가락을 다치지 않도록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디딜방아의 구조는 양다리 방아와 공이, 확, 쌀개, 볼씨, 괴밋대이다. 쌀개는 볼씨에 가로얹혀서 방아를 받치는 지렛대 원리의 나무이고, 볼씨는 쌀개를 받치기 위해 기둥처럼 박아 놓은 나무나 돌을 말하며 괴밋대는 방아확에서 곡식을 꺼내거나 방아를 쓰지 않을 때 공이를 괴어 놓은 나무이다.

디딜방아에서 발전하여 더 많은 알곡 및 가루를 내는 연자방아가 등장하게 된다. 연자방아는 연자매라고도 하며 윗돌의 중심에 구멍을 뚫고 나무막대를 가로 질러서 소나 말의 멍에에 고정시키면 소가 돌면서 돌을 돌리게 된다. 돌은 요철로 만들어져서 집어 넣은 곡식이 돌아가는 돌의 압력에 눌려 으깨지면서 껍질이 벗겨지거나 가루가 나오게끔 되어 있다.

보통 소를 모는 사람, 곡식을 넣는 사람 이렇게 2명 정도가 있어야 작업이 가능하고 소가 귀했던 시절 마을에서 공동으로 연자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어릴 때 소 모느라 지루하던 생각이 난다. 설이나 추석 명절 길흉사 등에는 떡을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불린 쌀을 찌어 내느라 분주하였고 김장철이면 고춧가루와 마늘을 빻느라 정신이 없었다. 밀, 콩도 가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힘들게 방아를 찌어야만 했다. 5, 6월 긴긴 해 늦도록 일하고 저녁이면 쉴 사이도 없이 보리방아를 찧어야 했다.

보리에 물을 끼얹어가며 애벌 찧고 난 후 다시 두 벌을 찌어야만 껍질이 다 벗겨진다.

요즈음 같은 웰빙 시대에는 운동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디딜방아를 통해 방아타령도 부르며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였다. 힘은 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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