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내음 물씬 풍겨'
'고향 내음 물씬 풍겨'
  • 예천신문
  • 승인 2011.12.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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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②'

◇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세시풍속이야기(45)
고향 내음이 물씬 풍기는 5일장은 삶의 색깔이 각양각색으로 묻어 있는 농민의 날이기도 하다. 장날에는 20∼30리 거리 안에 사는 농민이 한꺼번에 나타나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을 갖고 나와 생활필수품과 교환하는 날이다.

‘장날은 촌놈 생일 날’이다라거나 ‘사돈 장에 오셨니껴’라고 인사하는 것도 5일장날이다. 장날에는 단순히 장구경을 위해 오는 이도 있으나 제사가 드는 집에서는 제수(祭需)를 구입하기도 하고 읍면사무소나 조합에 볼일을 겸해서 오기도 한다.

‘남이 장에 가니 거름지고 장에 간다’라는 속담처럼 폐쇄(閉鎖)된 농촌환경에서 바람 쐬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장날에 병이 나는 것도 아닌데 병원엔 장날에 붐빈다. 아픈 것도 참고 장날 장보기 겸 해서 진료하는 지혜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에서 뻐꾸기 소리 화음 삼아 오가던 장터는 요즈음에야 현대화의 상품과 예스러움이 공존하는 장터로 변했지만 아직도 옛물건들의 추억과 어린시절의 풋풋한 시장 내음이 함께 풍기기도 한다. 정성과 땀이 담긴 농산물을 이고지고 나와 좌판(坐板)을 벌여놓은 난전(露店·노점) 할머니는 손자 용돈 번다고, 채소를 손질하는 거친 손마디가 애처롭기만 하다.

반지르르 윤기 흐르는 애호박에 농심(農心)이 가득하고 정성 다해 가꾼 오이, 깻잎, 부추, 매밀순, 상치, 비름나물, 냉이, 씀바귀, 미나리, 파 등이 주부들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잘 건조한 고추가 시집가기 위해 꽃가마를 기다리고 옆에만 가도 코가 맵고 재채기가 나는 걸 보면 태양초(太陽草)나 청량고추임에 틀림없다. 분단장(粉丹粧) 한 새악시 보다 더 깔끔하게 다듬어 엮은 마늘접에는 좋은 값에 팔리기를 기다리며 새 주인을 기다린다.

중국 농산물이 판을 치는데 예천에는 100% 토종알곡들이 올망졸망 포대(包袋) 속에서 입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장터 모퉁이에 구두, 우산, 가방 수선한다는 조그만 간판을 내걸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근검, 절약하던 조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발전의 흰고무신은 외출용으로 아꼈고 검정고무신이 작업용이었다.

갑자기 장터 한구석에서 휘리릭 예비음이 들리나 싶더니 ‘펑’라는 소리와 함께 김이 물씬 나고 사방으로 고소한 냄새가 코를 즐겁게 하는 뻥튀기 소리도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난전은 주차장으로 변했으나 설, 추석 전의 대목장에는 아직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라치면 파장(罷場)된 장터의 흥취(興趣)는 난전의 먹거리가 일품이다. 싸게 사고 제값 받으며 농산물 판매하여 쥔 돈으로 하루 종일 흥정에 지친 컬컬한 목에 손두부, 가마솥국밥에 막걸리 대포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던 옛 5일장터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었다.

피땀 흘려 생산한 농작물이나 송아지, 돼지새끼 등을 판매한 목돈을 소매치기들의 절도행위로 자녀 학비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수도 흔했었다.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祈雨)의 뜻에서 장골목을 한천 백사장으로 옮겨 개설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풍양, 용궁, 지보, 용문 등의 면부 5일장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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