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중심은 언제나 고향'
'화제의 중심은 언제나 고향'
  • 예천신문
  • 승인 2011.12.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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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풍양면민회 송년의 밤 … 12월 3일 대구 알리앙스 예식장에서

◇ 전 상 준 (풍양면출생ㆍ수필가)
늦가을 따사로운 햇볕 속에 노랗게 웃던 은행잎이 초겨울의 추위에 쫓겨 황급히 달아난다. 타향살이의 한기 속에 고향 냄새 짙게 나는 향우들의 소박한 잔치에서 향수를 달랜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한 12월, 고향을 예천 풍양에 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객지에서의 삶이 외로워 가슴 허전할 때 우리는 이렇게 한 번씩 자리를 같이 한다.

오늘은 ‘재구풍양면민회(회장 김병춘) 송년의 밤’이란 이름으로 모였다. 타향생활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응어리진 삶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며 술잔을 앞에 두고 활짝 웃는다. 화제의 중심은 언제나 고향이다.

풍양면은 삼면이 낙동강으로 쌓여 있는 육지 속의 섬이다. 60년대만 해도 의성 대구 방면을 제외 하고 상주, 문경, 심지어 같은 군인 지보면 쪽으로도 강을 건너지 않고는 갈 수 없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불편이 없으나 그때는 나룻배의 신세를 져야만했다.

자연 낙동강과 관련된 삶의 추억이 먼저다. 삼강주막, 낙동강 칠백 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주막이다. 우리시대의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고무줄 바지를 입고 줄담배를 피우며 양철지붕 오두막 뜰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모습.

여름 장마철이며 낙동강이 범람해 정성껏 지은 갯밭의 곡식들이 물에 잠겨 안타까움에 하늘을 원망하고 가난을 원망하던 이야기. 여름이면 더위를 잊기 위해 강물에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놀던 이야기.

지금은 풍양초등학교로 통폐합된 우망과 풍천초등학교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가을철 운동회라도 있으면 세 학교 학생들이 모여 운동경기를 하며, 서로 자기 학교를 응원하던 이야기.

저마다 학교 교정에 있던 놀이기구를 타던 이야기. 나무그늘 아래서 소꿉장난하던 추억. 연신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친다. 타향에서 고향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래서 즐겁다.

학창 시절 봄·가을 소풍 때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내 주위에 앉은 풍양초등과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소풍지에 대한 추억을 더듬는다.

가장 많이 간 곳이 ‘서동섬’이란다. 삼강에서 흘러온 낙동강물이 하풍 앞을 돌아 서동 마을 앞에 오면 넓은 백사장 가에 동네와 샛강을 만들고, 그 샛강과 본 강줄기 사이에 생긴 모래섬이 ‘서동섬’이다.

넓은 갯벌에 여러 종류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백사장에서는 씨름을 비롯한 기마전 등 여러 놀이를 해도 다칠 염려가 없었다. 서동 동네 뒤 와룡산 용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용두정’이란 정자를 바라보는 정취도 좋았다.

수산 동네 앞에 있는 ‘수산못’이라 불리는 큰 연못 둑이 얼마나 높고 크게 보였던지 지금의 안동댐 같았다며 웃기도 한다.

술 취한 친구가 고향을 그리는 애절한 노래를 쏟아내고 신명이 난 향우들이 밴드에 맞추어 춤을 춘다. 춤을 추면서도 거저 쳐다보며 웃고 손을 잡고 흔들며 정을 나눈다. ‘고향을 떠나면 천하다’는 말이 있다.

삶의 터전을 잡기까지 객지로만 떠돌며 보낸 지난 세월의 덧없음이 불현듯 가슴을 때린다.

고향이 있어 행복하고 향수를 달래게 해 준 면민회 임원진이 고맙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내뿜은 풋풋한 정이 자리를 달군다. 정과 함께 ‘재구풍양면민 송년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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