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은 복합적 문화현상
세시풍속은 복합적 문화현상
  • 예천신문
  • 승인 2012.04.1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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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세시풍속 ①'

◇ 정 희 융 (전 예천교육장)
●세시풍속이야기(50)

잘 아시다시피 세시풍속은 정월부터 섣달까지 일년 열 두 달을 주기로 같은 계절이나 절기에 되풀이 되어 전승되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민속신앙, 민속놀이, 구비(口碑)전승, 생업기술, 의식주(衣食住) 등이 두루 포함된 복합적인 문화현상이다.

정월의 세시풍속에 이어 음력 2월 중 우리 조상들의 세시에 대해 때는 늦었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음력 2월 초하룻날은 달리 부르는 말이 많이 있는데 뒤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이날 콩을 볶아 먹는 풍속에서 유래한 `콩 볶아 먹는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2월 초하루에 콩을 볶아 먹는 것은 전국적인 풍습이나 우리 예천에서도 어릴 적 어머니가 새벽 일찍 콩을 볶아 베갯머리에 갔다놓으면 고소한 냄새에 눈을 비비며 선잠을 깨던 때가 눈에 선하다.

콩을 볶는 목적은 곳곳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 벌레나 쥐, 두더지의 해를 막고 바랭이 같은 잡초의 번식을 제어(制御)하고 재액(災厄)이나 질병을 예방하여 농작물의 풍작을 위한 것이다.

또 곡식이 잘 여물라는 의미에서 콩을 볶기도 하는데, 콩이 톡톡 튀는 소리가 곡식 여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부뚜막솥 전에 앉아 초하룻날 식전에 콩을 볶으면서 “좀 볶자. 해삼 볶으자, 콩 볶으자. 새알 볶아라. 쥐알 볶아라. 콩 볶아라”라고 청승스럽게 노랫가락을 넣으면서 주언(呪言)을 읊는다.

일제 강점기에는 검은콩(黑太)을 볶으면서 “일본 놈 볶는다”라고 하면서 일본사람이 이 땅에서 물러가기를 바랐다.

2월 초하루 뿐만 아니라 정초 십이지일과 정월대보름을 비롯하여 겨울 내내 콩을 자주 볶아 먹었는데, 이것은 병충해와 벌레의 예방뿐만 아니라 겨우내 부족한 단백질을 콩으로 보충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6·25 동란 시절 어린나이에 볶은 콩을 자루에 넣고 피란가던 시절이 생각나는데 이것도 영양보충의 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전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2월 달, 농촌과 어촌에서는 영등할머니(바람할미)에게 치성 드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영등할미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며느리나 딸 중 누구를 데려 왔느냐에 따라서 일년의 풍흉을 점치고 여러 가지 금기(禁忌) 사항을 두었다.

황토를 파서 대문 앞 일곱 곳 정도에 놓아 신성(神聖)한 영역임을 표시하고 오색 헝겊으로 치장한 작대기를 사립문에 매달아 부정(不淨)한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표시해둔다.

음력 2월 초하룻날은 창호지(窓戶紙)로 문도 바르지 않아야 하며 땅을 다루거나 쌀을 집밖으로 내지도 않는다. 뱃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바다에 나가지 않고 쉬었다.

음력 2월 9일은 무방수(無防守) 날, 일명 `손 없는 날'이라고도 하며 어떤 일을 해도 해(害)가 없는 날이다.
민간에서는 음력 2월 초 하루에서 초여드레까지는 이틀씩 동서남북으로 손(害)이 날뛰다가 초아흐렛날에야 비로소 손이 하늘로 올라가므로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으며 무방수 날은 땅에서 물이 올라오고 지기(地氣)가 오르는 시기로 만물이 소생하는 날로 여겼다.

`성주단지를 뒤집어 놓아도 집안에 아무런 탈이 생기지 않는다' `시신(屍身)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해가 없는 날로 여겼다.

평소 꺼리던 변소를 옮기거나 새로 짓기도 하고 함부로 치지 못했던 못을 치거나 이사(移徙)나 이장, 장담그기, 나무를 심거나 베기도 하여 평소 조심하던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그 날이 2월 무방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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