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초등 개교100주년 소회'
'용궁초등 개교100주년 소회'
  • 예천신문
  • 승인 2012.06.08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독자기고

◇ 정하웅(기획재정부예산낭비신고센터 전문위원)
나의 모교인 용궁초등학교의 개교100주년을 경하해 마지않는 바이다.

지난 2월 14일 100회 졸업식에서 18명의 졸업생이 배출됨으로써 100기에 걸쳐 졸업한 총 인원은 1만 1천2백25명이나 된다. 이것은 한 세기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해 가면서 일궈놓은 명실상부한 명문교로 자리매김한 증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1912년4월 15일 개교를 한 용궁초등학교는 예천초등학교(1911.9.16)에 비해 몇 달 늦은 예천군내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학교로 인근 개포·지보·풍양면과 문경군의 산양· 영순·산북·동로면 등에 학교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곳 학생들까지 수용해야만 했던 경북북부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유서 깊은 학교라 할 수 있다.

긴 역사에 걸맞게 모교가 걸어온 길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은 것 같다. 억압된 일제 강점기에 개교돼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게 되었고, 1950년 6·25전쟁 시에는 UN군이 일시 교정을 사용하게 됨으로서 농업창고 등으로 전전하며 수업을 해야 했고, 관내에 있는 향석분교와 장평초등학교의 편입과 폐교, 중학교와 교정을 바꾸어 사용하는 등 크고 작은 희비들을 남기기도 했다.

모교가 명문임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동문 중에는 독립운동 정부포상자가 18명이나 되고, 행정·사법시험 합격자 등 고위 공직자를 비롯 학계, 금융계, 재계, 체육·문화계 등 다 방면에 걸쳐 많은 인재들이 배출됨으로써 국가 및 사회발전에 기여를 해 왔고 또한 지금도 해 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의 모교시절을 회상해 보면 장안사·회룡포·삼강 등 주변의 경승지를 찾아 소풍을 갔던 일, 힘껏 뛰며 응원하던 가을운동회, 연극과 음악 등으로 꾸민 학예회, 글짓기·웅변대회 등 즐거웠던 교내행사들과 공납금을 못내 집으로 되돌아 온 일, 갱지로 공책 만들고 꽁보리밥에 날된장 도시락, 맨발에 낡아진 고무신 등 가난했던 형편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한 것들이 그리워서 인지 우리 동기생(43기, 1955년 졸업)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해마다 전국에서 60여명이 고향 아니면 중간지점에서 만나 회포들을 풀고 있다.

금년에도 6월 9일 모교 교정에서 총동창회가 주관하는 `개교 100주년기념행사'가 끝나는 대로 별도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개교 100주년을 맞는 기쁨 속 한편에 허전한 마음은 왜일까? 그것은 너무나 작아진 모교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질적 보다는 외형 즉 학생 수가 많고 적음이 더 중시되고 있다.

내가 다니던 때만 해도 한 학년이 3개 학급에 1백80명이었고 전교생은 천여명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 모교 전교생이 60명이라니 1/18로 줄어든 셈이다. 참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소풍을 간들, 운동회를 한들, 학예회를 한들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한 학년에 10명 내외의 아이들이 옹기종기모여 수업을 받게 되면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손길이 더 가까워져 학습효과가 훨씬 좋아 지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가 학교다워야 하지 않는가.

이대로 가다간 어떠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좋아진 교통수단 등으로 인해 인근 학교 간에 통폐합이라도 되기나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학생 수를 늘려야 하는 문제는 비단 모교뿐만이 아니다.

농촌학교 모두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도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지역주민, 학교당국이 힘을 모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라 생각된다.

개교100주년에 즈음하여 모교가 교육과학기술부의 공모 형 `2012년 농어촌 전원학교'로 선정된데 축하를 보낸다. 학교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이영구 교장선생님 이하 여러 교사님과 교직원들의 노력을 격려하며 용궁초등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