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와 미호동안'
'지자체와 미호동안'
  • 예천신문
  • 승인 2012.08.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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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김 시 우 ㆍ보문면 출생 ㆍ평택대 대우교수 ㆍ독립기념관 전 사무처장
예천군의회 의장 선거 금품수수 사건으로 지역민 사이에는 지자체에 대한 불신이 크게 번지고 있다. 심지어 민도가 지자체를 시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자학적인 발언도 심심찮게 나오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일부 역기능적인 부분을 가지고 그 제도 자체를 부정함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예천지역 지자체의 연원을 살펴보면 물론 지금과 같은 지자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보문면 고평동과 미호동에서는 이미 1600년대에 주민자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조선왕조는 고려에 비해 지방 통치나 향촌사회의 성장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한 신흥사대부들은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중앙 집권세력이 된 훈구파와 향촌의 재지 세력인 사림파로 나누어지는데 훈구파는 지방통치의 기본방향을 중앙정부로 집중시키려는데 반하여 사림파는 중앙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향촌사회의 독자성을 유지하려 하였다.

특히 사림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16세기 말엽부터 17세기 초기였다.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참화를 입었으나 사림세력은 의병활동에 힘입어 더욱 굳건해졌다. 조선 전기에 훈구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기존 질서는 임란과 호란을 겪는 동안 와해되었고 새로운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신분제의 해체와 민중세력의 성장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양반 중심의 향약 향규 등이 양반과 상민이 모두 참여하는 里洞단위의 동안(洞案)·동계(洞契)·동약(洞約)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조34년(1601) 약포 정탁(鄭琢)선생이 초안 시행한 고평동안이나 광해군9년(1617) 미호동안이 그 좋은 예이다. 동중입의(洞中立議)로 제정된 미호동안의 내용을 보면 “우리 마을은 난리(임란)를 겪은 뒤로는 강을 끼고 이리저리 흩어져 살아 매우 쓸쓸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죽고 사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서로 간에 생각하고 도와야 할 것이니 이러한 정도의 신의조차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상하 간에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고 그 취지가 담겨져 있다. 동중입의란 동민들이 합의하여 만든 규약이란 뜻이다.

그 후 영조41년(1765)년 당시 그 동리의 명망 높은 선비 김길귀(金吉龜)가 고평 정 약포 대감이 초안한 완의(完議)권면조(勸勉條)와 금제조(禁制條)를 참고하여 새로이 동안을 개정하였다.

완의(完議)란 전체 구성원의 총의에 의해 완전 합의하여 제정했다는 뜻이다. 권면조는 실천해야할 내용이고 금제조란 금지해야할 내용을 조목조목 정해 놓은 것이다.

권면조에는 충효 정신과 선린·돈목·장유질서 그리고 선공후사(先公後私)·성실납세·염치·의리가 강조되어 있고 금제조는 국정이나 주·현의 정사를 논하는 행위, 어른을 능멸하는 행위, 힘없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행위, 이웃 간의 불목, 산림·묘역훼손, 과음·욕설, 모임에 불참 등을 금지하고 경계하는 내용들로 거의 완벽한 동민 자치가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지금의 지자체는 1994년에 시행된 이래 진정한 주민 자치와는 그 방향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정당공천제를 도입하여 지역정당 간 정치싸움의 연장선상에서 정당들이 지방자치를 마치 ‘자기들의 봉토’ 쯤으로 여기고 단체장과 의회의원들을 자신의 하인처럼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중앙과 끈이 닿는 소수의 토호들이 득세하여 민의가 반영되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여지가 없게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올바른 지자체가 뿌리내리려면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관료적, 중앙집권적 전통이 뿌리 깊게 박혀진 탓에 지방분권에 따른 주민자치의 전통이 뿌리내리기에는 주민들의 각성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부수립 이래 1, 2공화국 때 잠시 실시하던 지자체는 5·16이후 행정능률의 극대화란 미명으로 이를 중단하고 수직적 관료체제로 국민을 길들인 그 여독이 도처에 남아있다.

제6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시행된 지자체는 민주화 추세에 맞춘 제도이다.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에 바탕 해야 민주주의가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역기능이 있다고 해서 원론적인 민주이론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스스로 육성시키는 정치권력은 매우 드물다. 주민이 지키고 다듬어야 그나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 예천군의회의 사건이 예천지역의 건전한 지자체 발전에 시금석이 되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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