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달'
'한 해의 마지막 달'
  • 예천신문
  • 승인 2012.12.27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섣달의 세시 풍속'

◇ 정 희 융 (예천문화원장)
● 세시풍속이야기(65)

섣달은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달이다. 12월 극월(極月) 납월(臘月) 제월(除月) 빙월(氷月) 궁동(窮冬) 모세(暮歲) 등으로 불린다.

`섣달이 둘이라도 시원치 않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시일을 연기하여도 일을 성취시키거나 일이 이루어질 가망이 없다는 말이다.

`섣달받이'는 음력 섣달 초순께 함경도 앞바다로 몰려드는 명태의 떼나 그 때 잡힌 명태를 말한다.

섣달은 남의 달이라 하여 큰 물건을 함부로 구입(購入)하지 않았는데 만약 솥(鼎)을 사들이게 될 경우 일단은 거름 위에 엎어 두었다가 그믐날이 되어서야 부엌아궁이에 걸었다.

이렇게 해야 탈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섣달 그믐은 한해를 결산하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에 밀린 빚이 있으면 이날 안에 갚았고 남에게 빌렸던 물건이나 책(冊)이 있으면 모두 돌려 주었다. 또한 돈을 꾸지도 않았고 혼인(婚姻)도 하지 않았으며 연장도 빌려주지 않았다.

그믐날 밤에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었으며 바느질 하던 것도 닭이 울기 전에 얼른 마무리하여 해를 넘기지 않았다.

섣달 그믐이면 아이들이 노인들만 있거나 환자(患者) 또는 쌀이 떨어진 집을 골라 몰래 곡식을 담 너머로 던져주는 `담치기' 놀이를 하여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을 길렀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세산이라하여 마른 생선 육포(肉脯), 곶감, 사과, 배 등을 친척 또는 친지들 사이에 주고 받는다.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美風良俗)도 있었다.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養老) 잔치를 벌였는데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 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뇌물(賂物)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起因)한 풍속으로 보인다.

마을에서는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出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리탕' 잔치로 대신하였다.

겨울철에는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이나 늪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삽으로 뒤지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어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鰍魚湯)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하였다.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아름다운 풍속이라 본받아야겠다.

어릴 때 꽁꽁 언땅을 헤치며 미꾸라지 잡던 일이 눈에 선하다.

기계문명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자연의 섭리(攝理)에 기대어 농사만 바라보고 살면서도 이웃과 더불어 음식을 만들어 주고 받으며 하루하루를 풍성한 마음으로 잔칫날처럼 정잡게 살다갔다.

각박한 오늘 날 세태지만 우리들 누대(累代)에 걸쳐 이룩한 민족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