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상
밥 상
  • 예천신문
  • 승인 2013.01.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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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저녁 식탁에는
당산나무 터줏대감 확성기로
`아! 마을주민 여러분'으로 새벽잠 깨우는
이장 댁에서 보내온 시금치로 끓인 된장국과
바로 아랫집 아저씨가 뽑아온 움파 무침과
마을의 터줏대감 백 사장님 동치미가 한 상에 정답다
간고등어 공장에서 일한다는 옆집 아주머니는
참가자미 한 손 계면쩍게 내밀며 반지르르 졸여보란다
귀촌 겨우 석 달
이집 저집 인심들이 상위에서
잔설 속 캔 냉이 향처럼
인심에 취해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사십 여년 닫아걸던 야박한 마음이
여름 날 쨍쨍 뜨거운 열기에 옷차림이 저절로 얇아지듯
비로소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리는 여기는
선한 사람들이 둥글게 이룬 촌락
후다닥 결행한 귀촌은
아직도 S극과 N극처럼 서먹한데
어둠이 내리면 새소리도 잠잠해지는 저녁식탁에
꿈결인 듯 마주 앉아
밥상 위 질펀한 인정들이 숟가락질 가볍다

◇ 이 근 숙
ㆍ문학산책 등단/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회원/ 시집 '생각들이 정갈한 저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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