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남부지방 여자들의 놀이'
'주로 남부지방 여자들의 놀이'
  • 예천신문
  • 승인 2013.04.25 1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전놀이'

◇ 정 희 융 (예천문화원장)
● 세시풍속이야기(75)

놀이를 좋아하는 우리 조상들은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 오면 진달래나 찔레의 꽃잎을 따서 전을 부치거나 떡에 넣거나 하여 여럿이 모여 먹는 놀이를 하였다.

우리들이 어릴 때만 하여도 어머님들이 동리 뒷동산에 올라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며 농사의 풍년도 기원하고 가내 무사형통의 놀음놀이를 즐겼다.

이것이 화전(花煎)놀이이다. 순 우리말로는 ‘꽃달임’이라고도 하고 여자들의 놀이이며 남부지방에서 주로 행하여졌고 짓궂은 남정네들도 술 한 잔 얻어먹으러 놀이판을 기웃거리며 어울리기도 하였다.

화류(花柳) 놀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이야 회비(會費) 모아 주로 관광여행을 떠나지만 조상들은 각자 특유의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곤 했다.

화전놀이의 유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옛기록에는 화전놀이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제법 많이 나온다.

삼국유사 김유신 조에 보면 ‘매년 봄에 온 집안 남녀들이 청연 남쪽 시냇가에 모여서 잔치를 열었다. 이 때 백가지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고 소나무꽃(松花)이 골짜기 안 숲속에 가득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볼 때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송화가 피는 계절, 즉, 음력으로 3∼4월에 일가친척이나 친한 사람들 끼리 들과 산으로 나가 하루를 즐기는 꽃놀이 전통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 부녀자들에게도 가장 기품(氣品) 있고 풍류(風流)적인 놀이는 역시 화전놀이였다.

양가댁(良家宅) 규중 부녀자들이 청명(淸明)절을 전후하여 들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읊은 것이 조선여인의 풍류 노래라 할 수 있는 화전가(花煎哥)가 바로 그것이다.

대개는 화전놀이에서 돌아와 그날의 흥취와 감회를 오래도록 남겨두기 위해서 짓는 것이 보통이다.

이 화전가에 나타나는 내용으로는 경승지(景勝地)의 풍물과 가문법도(家門法度), 여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탄식 등이 주를 차지한다.

화전가에 나타난 화전놀이의 과정을 살펴보면 놀이에 대한 공론(公論)→택일→통문→(시)부모님 승낙→준비(음식)→몸치장→나들이→화전굽기→유흥(遊興)→귀가이다.

화전가에 나타난 바를 보면 놀이를 계획하는 과정부터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그 속에는 시집살이에 묶인 여성들의 자유롭지 못한 상황과 그러한 삶의 조건에 대한 여성들의 아타까움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화전놀이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삶의 활력(活力)을 주었던 놀이였던가를 알 수 있다.

여기 ‘화전가’ 일부를 소개하면

‘가소롭다 가소롭다 여자 일신 가소롭다. 규중에 깊이 묻힌 여자 유행 같을 소냐. 우리 동류 서로 만나 한 번 놀기 어렵거던, 무심하신 남자들아 우리 말 좀 들어보소. 팔자 좋은 남자들이 부럽고도 애닲으다. 규중 안 여자라도 이리 놀 줄 알건마는 남자놀음 열 가지에 한 가지도 못하오니 가소로운 여자신세 어리고도 어린 마음 그 아니 애닲은가. 애닲고도 애닲도다. 규중이 깊다한들 몇 길이나 깊었던고 십리출입 오리출입 마음대로 어이하리. 친구도 사군자(四君子)와 봉제사 접빈객(接賓客)에 규중의 여자일신 조심되기 그지 없고 명주길삼 삼베길삼 방적 골몰하다. 이런 걱정 저런 걱정 어느 여가 놀잔 말고. 애닲은 규중심처 화전 가서 풀어보자.'(후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