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은 조선후기 여성 혼수품
요강은 조선후기 여성 혼수품
  • 예천신문
  • 승인 2013.07.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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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은 조선후기 여성 혼수품'
세시풍속이야기// 화촉동방(2)
정희융 문화원장

화촉동방에 필수불가결(必須 不可缺) 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요강이다. 오늘날에야 신혼여행을 외지로 떠나고 실내에 화장실이 있어서 별로 필요없는 그릇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뒷간이 실내가 아닌 바깥에 있어서 요강은 밤에 방에 놓아두고 용변을 보던 기구이다.

어렸을 때 귀신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우리는 요강을 가지러 마루에 나가는 일조차 참 무서웠다.
세수하는 대야와 함께 요강은 조선후기 여성들의 삶의 필수품이요 혼수(婚需) 용품이었다. 부유층은 놋요강을 썼고, 서민들은 질그릇 요강을 썼다.

그런데 화촉동방에 들여놓는 요강은 어떠했을까? 갓 시집 간 신부는 `첫 날 밤엔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에 방안에서 소변을 보아야 했기에 요강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새 신부는 많이 부끄러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방의 요강 속에는 쌀겨나 솜, 모래를 살짝 깔아두고 물을 자작하게 미리 부어 두어 소변을 볼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배려(配慮)를 했다.

물론 이 요강은 신방뿐 아니라 가마 타고 장거리를 갈 때도 가마 속에 넣어둔다. 그 때 친정어머님이 딸 부자 되자고 쌀을 하나 가득 넣어 보내기도 하였다.

또 옛날 이야기를 보면 신혼 첫 날 밤에 신랑 신부를 바꿔치기 하는 수도 있곤 하여 용변을 보고 싶어도 절대 밖에 못 나가도록 하는 차원에서 요강을 준비하였다.

지금은 거의 요강을 쓰지 않지만 정력(精力)이 센 사람이 사기요강에 오줌을 누면 요강이 깨진다는 우스개도 있어 복분자(覆盆子)라는 딸기도 있다. 또 `요강 뚜껑으로 물 떠먹은 셈' 이라는 말은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꺼림칙함을 비유한 말도 있다.

`화촉동방' 노래도 있다. 1942년 일제 때 백난아(1923∼1992)가 부른 대중가요이다.
`1절: 항라(亢羅) 적삼 옷고름이 휘늘어진 꽃방석에 청동화로 인두꽂아 밤을 새운 옷입니다. 한솔기 복(福)을 싸고 두솔기 명(命)을 싸서 일편단심(一片丹心) 받들겠소. 언제든지 받들겠소. 2절: 구름 같은 북도다리 병풍 위에 걸어놓고 당사(唐쭖)실을 풀어내어 밤을 새운 옷입니다. 한 땀에 천도(天桃) 박고 두 땀에 청란(靑蘭) 박아 일부종사(一夫從事) 모시겠소. 언제든지 모시겠소.'

이런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선비 송강(松江) 정철, 일송(一松) 심희수, 서애(西厓) 류성룡, 월사(月沙) 이정귀, 백사(白沙) 이항복이 만났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지를 내기 하였다.
송강은 맑은 밤 달 밝은 때에 다락 위로 구름 지나는 소리, 일송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인데 바람 앞에 원숭이 우는 소리, 서애는 새벽 창가 졸음이 밀리는데 술독에 술 거르는 소리, 월사는 초간서당(草間書堂)에 선비가 시(詩) 읊는 소리, 백사는 동방화촉 좋은 방에 신부가 다소곳이 치마 끈 푸는 소리라고 하였다.
백사 이항복이 단연 1등을 하였단다. 이혼율이 높은 오늘날에도 화촉동방은 마음 설레이고 아름다운 장소이다. 동굴 속에 살아도 부부사랑이란 우주 자연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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