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업계 최고 자리에 올라
동종업계 최고 자리에 올라
  • 예천신문
  • 승인 2013.10.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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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TK상사 이준우 대표

“제가 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업 시작한 지 20년만에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TK상사 이준우(서울·예천읍 용산리 출생) 사장의 야심찬 각오다.

이 사장은 사업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1년 동안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점원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4년 후 1995년 10월 1일 TK상사를 설립해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 사장은 미대 졸업 후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 퇴사 후 의류부자재 도·소매로 의류회사 및 신발공장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림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기업체 담당 디자이너 및 상품 기획팀들과 의사소통은 물론 제품개발 및 아이디어를 주고 받아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시련도 따랐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던 1997년 IMF 때다. 국내 의류 및 신발 제조회사들이 인건비가 싸고 부자재가 싼 중국, 동남아로 진출하면서 회사는 새로운 제품으로 사업 전략을 바꿔야만 했다.

이준우 사장은 판촉물 제조 및 유통에 뛰어들었다. 판촉물도 활황의 시기가 있었지만 인터넷 통신판매와 제조회사들의 직납으로 제조공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위기감을 느낀 이 사장은 제조 공장을 설립하고 인터넷 온라인으로 고객을 모으고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새로운 아이템인 신분목걸이와 행사용 목걸이, 각종 케이스 그리고 휴대폰 목걸이였다.

이 사장은 자기 제품을 가지고 대기업을 상대로 판매 전략을 세운 것이 지금껏 큰 어려움 없이 동종업계 국내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가미한 제품 개발이 인터넷 쇼핑몰 시대에 들어맞은 것이다.

휴대폰이 국내 보급되면서 휴대폰 목걸이가 수백만 개씩 팔려 나가기 시작했고 그 후 USB가 개발되어 목걸이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 때 국내에서 처음 삼성그룹이 각 사업장마다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스마트카드가 보급되기 시작할 쯤 TK상사는 신분증 목걸이와 함께 신분증 케이스를 개발하고 의장 및 실용특허를 냈다.

그 후 TK물산(주) 법인을 추가로 설립하여 제2 창업 정신을 가지고 목걸이 케이스 제품에만 전념하여 국내 최고의 생산 공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후발 주자들이 몇몇 생겨났지만 TK상사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독과점 체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백40평 규모의 서울 영등포 공장에 실크인쇄, 실리콘인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인천 계양구에 제2사옥을 마련하여 가공 및 품질 검사 납품 시스템을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다.

상일동 공장에서는 원사를 이용한 끈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부천쌍용테크노파크 공장을 분양 받아 열 전사 인쇄공장을 설립, 최첨단 컴퓨터 자동화 기계 설비를 갖춘 국내 최고의 전문회사로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심부 방산시장 상가에 쇼룸을 만들어 개인 소비자들과 한층 가까워졌다.
현재 TK상사는 연매출 50억 목표인 중소기업으로 도약한 상태다.

이준우 사장은 “20여명 사원들은 모두 내 가족이란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앞으로 채용 규모를 늘리고 고향을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 봉사에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TK상사는 삼성·SK·LG·현대·롯데그룹, 정부기관, 군부대, 전국 초중고대학, 전국은행, 대학종합병원 및 국내 1천여 회사와 2012 여수엑스포 행사 목걸이, 2012년 런던올림픽 행사 목걸이,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준비 등 국내외 거래처 1천5백여 곳 회사와 거래하고 있다.

예천읍 용산리가 고향인 그는 매월 두 세 번 고향을 찾아 훈훈한 정을 나누고 있으며 살고 있는 영등포구 양평동 주민들과 모임을 함께하는 등 황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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