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풍골 이름 찾기
은풍골 이름 찾기
  • 예천신문
  • 승인 2015.05.11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심광장

▲황정근 변호사 ㆍ하리면 송월리 출생
지난 달 26일, 어릴 적 뛰놀던 은풍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다.

은풍초등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있었고, 거기서 하리면 지역 어르신들과 선후배와 친구들을 만나고 상경했다. 하리면사무소에서 오래 근무했던 아버님의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이 더욱 반갑다.

하리면 곳곳에는 ‘은풍골 이름 찾기 추진위원회’(위원장 조제노) 출범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리면’을 ‘은풍면’으로 개칭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내가 하리면 송월리에서 태어나서 1967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간 곳이 바로 은풍국민학교다.

풍기 백동에서 대대로 살다가 할아버지가 30살이던 1935년 하리면으로 이사 와서 아버지 형제부터 우리 일곱 남매가 모두 다닌 학교가 은풍초등이다.

나는 6학년 2학기에 예천동부초등으로 전학을 갈 때까지 다녔다.

하리면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교인 은풍초등을 다닐 때, 왜 ‘하리’초등이 아니고 ‘은풍’초등인지 참 궁금했다.

‘은풍’(殷豊)은 고려 초에 처음 등장한 은풍현에서 나온 유래 깊은 지명이다. 지금의 하리면 은산리가 현 소재지였다.

‘현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 문종의 태(胎)를 은풍현 명봉산에 매안(埋安)하자 조정에서는 현감이 다스리는 것은 그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 보아 군수가 다스리는 군으로 승격시키기로 하였다.

이에 인근의 기천현(基川, 지금의 풍기읍)과 은풍현을 합쳐 풍기군(豊基郡)을 창설하였다.

은풍의 풍(豊) 자와 기천의 기(基) 자를 따서 풍기라 작명하고 군수를 두었다.

두 곳을 합하여 지명을 만들 때 한 글자씩 따서 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필자의 본관인 창원(昌原)은 의창과 회원이 합쳐진 것이고, 용인(龍仁)은 용구와 처인이 합쳐진 이름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안동과 예천이 합쳐지면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궁금하다. 예안, 동천, 안천, 안예……. 차라리 제3의 ‘소백시’가 낫다.

1543년 순흥 땅에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과 1550년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 친필 현판을 사액 받은 퇴계 이황이 군수를 지내 유명한 군이 바로 풍기군이다.

지금의 하리면은 갑오경장 후 1895년 근대 행정구역 개편 때 ‘풍기군 하리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겼다.

은풍의 풍 자는 이미 풍기에 들어가 있었기에 은풍면으로 하지 않고, 은풍현의 아래쪽은 하리면, 위쪽은 상리면 하는 식으로 새로 작명을 한 듯하다. 풍기군은 일제 때인 1914년에 영주군으로 통합되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하리면은 1923년에 상리면과 함께 영주군에서 예천군으로 편입되었다.

하리면을 은풍면으로 바꾸는 것은 고려 초부터의 은풍이라는 옛 지명 역사를 되찾는 일이고, 은풍초등학교의 이름과 지명을 일치시키는 일이어서 시의적절하다.

상리면도 원래 은풍현의 일부였으니 하리면이 은풍면으로 하는 데 대해 상리면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다만 은풍현 소재지가 하리면 지역이었고, 하리면에 은풍초등과 은풍중학교가 있기에, 하리면 지역만을 은풍면으로 개칭해도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역사에서 배우고 옛것을 오늘에 되살려 오늘의 우리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다.

필자는 두보의 옛 시에 나오는 말을 빌리자면 ‘지비(地卑) 천고(天高)’한 은풍골 출신으로서, 은풍골 이름 찾기 추진에 큰 박수를 보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