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인선, 해법은 있다
총리 인선, 해법은 있다
  • 예천신문
  • 승인 2016.11.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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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정근   ·은풍면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진주지원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역임/ 변호사(황정근 법률사무소)
 '정돈(停頓)상태'라는 법률 용어가 있다.

 상법 제520조에 나오는 용어로 영어 데드록(deadlock)과 같은 뜻이다.

 요즘의 한국 정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돈(停頓)의 정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해 국회에서 새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야당이 응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정돈상태를 깰 안티 데드록(anti-deadlock) 시스템은 없을까. 정치는 결국 타협과 절충이다.

 양측이 명분 있게 물러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국정 문란을 바로잡는다고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국헌문란(國憲紊亂)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첫째, 절차적 타협책으로, 먼저 '국무총리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의 총리, 국회교섭단체 추천 인사, 대통령비서실장, 사회의 지도적 명망가 등으로 구성된 총리추천위를 꾸려 새 총리를 추천하게 하고, 대통령이 이를 존중하여 지명한 다음, 국회 인사청문회와 동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으면 된다.

 총리 임명이 대통령 고유 권한이므로 추천위를 둘 수 없다는 반론도 있으나, 헌법에서 금지하는 것이 아니므로 추천위를 두더라도 위헌은 아니다.

 인사청문회 제도도 헌법상 근거 없이 시행하고 있다. 이미 유사한 제도가 있다. 헌법상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법률에서 대법관추천위 제도를 두고 있다(법원조직법 42조의 2).

 헌법상 검찰총장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면 되지만 2011년부터 검찰총장추천위 제도가 법제화되었다(검찰청법 34조의 2).

 총리추천위는 정부조직법에 근거를 두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면 대통령령으로 우선 시행해도 무방하다.

 대법관추천위 제도가 2011년에 법원조직법에 신설되기 전에 대법원은 이미 2003년부터 대법원내규로 추천위를 운영했던 전례가 있다. 이러한 논의는 헌법기관장 구성권을 국회와 대통령이 분점하는 다른 경우로 확대해야 한다. 내년에 바뀌는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입법·사법·행정 3권이 함께 참여하는 추천위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내용적 타협책으로, 이번 기회에 '새로운 총리관(觀)'을 정립해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 보좌기관이라는 소극적 총리관에 머물렀다. 민주공화국(헌법 1조 1항)에서 말하는 공화 정신의 핵심은 바로 '함께 일하는 것', 다시 말하면 3권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과 더불어 행정부 내에서도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이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국정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는 물론 총리·국무위원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헌법상 공화주의적 요청을 경시하였기 때문에 비선이 발호하는 작금의 헌정 문란이 일어났다. 위기의 시기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 공화주의적 국정 운영이 필요하다.

 황희는 허물이 있었지만 유능한 재상이었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늘 황희 정승의 뜻에 따라 처리하라고 말했다.

 이번에 그런 총리를 세워서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 소극적 총리관에서 벗어나 현재 상황과 정치 현실을 반영한 '적극적 총리관'을 토대로 대통령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정국 수습 과정에서 어떤 방안으로 결말이 나든, 새 총리를 세우는 일은 필수적이다. 총리가 이번처럼 중요해진 적은 없다.

 이 어려운 시국에 실기(失機)하지 않고, 국민이 정말 감동적이라고 박수를 칠 만 한 그런 인물, 깜짝 놀랄 만한 대담한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종래 해오던 인사 행태로는 성난 민심을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종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그냥 작대기로 종을 쳐서는 안 된다. 훌륭한 당목(撞木)으로 종을 쳐야 민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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