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望鄕庭(망향정) 고려미술관
교토의 望鄕庭(망향정) 고려미술관
  • 예천신문
  • 승인 2017.02.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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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만 교수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예천초등(58회), 예천중(24회), 대창고(22회), 홍익대 미대·동대학원 졸업 ·한국도자학회 회장 역임
 지난 舊正(구정) 무렵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전시 때문에 일본의 교토를 방문하게 되었다.

 외국 여행이 자유로운 시대여서인지 교토는 한국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교토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청수사, 금각사, 은각사, 철학의 길 등을 주로 방문하지만 나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鄭詔文(정조문)(1918~1989)은 일제강점기 부친 鄭鎭國(정진국)씨가 가세가 기울자 아내와 아들 둘(정조문 차남으로 당시 6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형사들의 잦은 출입과 간섭으로 식구들은 흩어지면서 정조문은 부두의 노동자가 되었다. 훗날 파친코 게임장을 운영하면서 돈을 모으게 된 정조문은 교토의 전통거리인 기온에서 우연치 않게 조선의 항아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 일본 전역에 산재해 있던 우리 문화재 1천7백여점을 어렵게 수집하여 1988년 유일한 해외미술관인 '고려미술관'을 개관하게 된다.

 그러나 정조문은 성공한 사업가로서 평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의 고운 은빛 모래사장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 까닭은 과거 일본 내에서조차 남북한 이념의 골이 깊었던 시기 가족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조문은 통일된 한반도를 연상하면서 진정 문화와 이념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판단한 고려시대를 선택해서 '고려미술관'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고 하니 그의 고국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교토 외곽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된 아담한 미술관에는 유네스코 등재를 노력하고 있는 유물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많은 사람은 그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간송미술관에 전형필이 있다면, 교토의 고려미술관에는 정조문이 있다"고도 한다.

 교토를 가는 길이라면 중심가에서 2, 30분 거리에 있는 미술관 방문을 권하고 싶다. 금각사의 금박처럼 색에 눈멀어지지는 않을 만큼, 유적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떠나올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고맙게도 여겨지는 정조문의 고향은 은빛모래 가득한 풍양 優忘里(우망리)이다.

 자랑스런 출향이지만 혹시나 잊혀질까 소개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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