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샘솟게 한 마을 우물을 복원하다 (6화)
복을 샘솟게 한 마을 우물을 복원하다 (6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7.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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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고향
고려시대 고향 복천에는 사찰이 하나 있었다. 당시 이 절에는 오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물맛이 시원하고 달지 않아 복천(福泉)이라 이름 짓고 사찰도 복천사(福泉寺)로 지명하였다. 또 마을 지명도 우물의 유래를 따라 복천(福泉)으로 정하였다.
 
예로부터 생명, 농경(農耕), 왕권(王權) 등 상징성을 가진 우물은 한 마을과 도시의 중심공간으로, 함부로 오염시켜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상수도가 널리 보급되면서 전국에 있던 우물들은 점점 쇠락하며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마을도 원 물은 남아있으나 지난 시절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 매번 그 초라함이 안타까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물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의식주의 기본은 물론이요, 농업, 목축 등의 각종 생산 활동에 있어서도 물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지하수를 끌어 올려 일상생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우물은 수많은 신화와 역사가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귀향 후 아침마다 옛 추억을 찾아 동네 산책을 다니던 중 우연히 옛 우물터를 지나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달리 휑하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하니 그 자리에 마을의 상징적 의미가 될 수 있는 유산이 하나 쯤 있으면 어떨까 싶던 차에 마침 마을 친목회인 복천회가 중심이 되어 우물을 복원하자는 뜻이 모아졌다. 안 그래도 우물이 복원되면 후대에게 자기 뿌리에 대한 좋은 공부가 될 듯 싶어 여러 가지 구상이 많았던 차였다. 또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도 마을의 상징적 이정표 역할도 되고 무엇보다 향민들 스스로 고향 땅에 대한 긍지를 가지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세계적으로 우물에 대한 제사는 아주 보편적 현상으로 전해진다. 고대 로마에서 10월 13일에 열린 폰티날리아 축제는 샘과 우물의 신을 경배하는 감사제였다. 또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이슈타르신, 켈트족이 섬긴 디아나 여신 등 전 세계의 신화에서는 우물의 신을 곧 풍요와 생명의 신으로 섬겼다고 전한다. 그리고 가뭄으로 비를 갈구하는 기우제를 지낼 때 대부분 우물가에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재나 유물이란 것은 없애버리기는 쉽지만 다시 재건하고 복원하기 까지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드는 법이다. 향민들과 예산집행부터 복원절차 및 제막식 준비 등을 상의하다가 우물 복원 사업 추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고향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참여할 의지가 있던 터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 우물과 표지석 (표지석은 개봉하기 전이다)
▲ 우물과 표지석 (표지석은 개봉하기 전이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우물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고 표지석도 세웠다. 복천우물 복원 고유제는 원형으로 집전해야 하기에 경북 유도회 교육국장인 한중섭 선생께 청원을 드렸다. 모두가 마음을 합쳐 준비한 끝에 2016년 11월 13일 오전 10시, 지인 7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복천우물 복원 고유제>와 표지석 제막식 행사를 무사히 치러졌다.

 
향민들과 한마음 한 뜻으로 준비한 고유제는 경북 유도회 교육국장인 한중섭 선생이 예천 청년유도회원 8명을 참여시켜 전통방식으로 집례가 행해졌고 의병도대장 김면 장군의 후손인 김남재 선생의 시낭독도 이어졌다. 또 박중배 오천 서당 영모회장이 <복천마을 우물과 복천마을 생성에 관한 유래>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동생 봉주도 인동 장씨 연복군 후손 복천주손의 자격으로 고유제의 중요한 역할인 초헌관을 봉행하였다.
 
또 아헌관에 나주 정씨 문중대표 정해일, 종헌관에 신대영 성현동장이 담당하였다. 권창용 예천문화원장도 뜻 깊은 날을 기념하는 축사로 복천마을의 부흥을 기원해 주었다. 향민들 역시 제례를 따르며 복천 마을의 발전과 평화를 기원하였다. 도시 사람들 눈에는 이런 행사가 자칫 비과학적인 행위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삶의 근간이 되는 흙 한줌,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 샘 하나 조차 가벼이 보지 않았다. 그런 자연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높이 보며 그것에 염원을 담아 비는 기복신앙은 개인의 부귀영화보다 공동체의 번영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성공이었다. 복천 마을 사람들이 이번 고유제에 들인 정성은 바로 이런 기원의 맥락이다.
▲ 우물복원 고유제
▲ 우물복원 고유제

한 마을의 우물은 그곳에 터를 잡고 이들의 육체와 정서적 건강과 맑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마르지 않는 우물은 새로운 생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대기오염과 각종 공해로 식수사용이 불가능하거나 폐쇄된 우물들이 늘고 있다. 옛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나 마을 전체의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우물이 마르는 순간 재앙이 찾아든다고 믿었다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어지러운 시국 상황도 우리 땅의 우물들이 처한 현실을 살려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우물을 뜻하는 ‘정(井)’과 시장을 뜻하는 ‘시(市)’가 결합된 ‘시정(市井)’이란 말은 “인가(人家)가 모인 거리,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고대부터 공동우물을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자연히 우물은 만남의 장소이자 마을 성장의 중심이 된 것이다.
 
흔히 우물을 샘이라 비유하는데 샘은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도 베풀며 마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향민들이 우물을 재건하고자 한 뜻은 단지 우리만 복을 얻고 잘 살아보자는 차원이 아니라 용문 지역 모든 마을과 주민, 또 찾아오는 전국의 모든 관광객들과 생명의 기운과 복을 나누겠다는 대승적 의미라 할 수 있다. 또 마을 우물의 고유제를 통해 사람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고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세상이 구현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그 소망이 꼭 이루어져 올 한해, 복천 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마르지 않은 샘처럼 큰 복과 정이 솟아나는 희망의 세상이 되기를 간곡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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