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나의 가족들_1 (7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나의 가족들_1 (7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9.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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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가족
직접 영화를 제작해 본 입장에서 다른 감독들이 만든 뛰어난 작품들을 감상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어려서부터 무던히도 많은 영화를 관람했다. 10대 시절에는 없는 용돈도 쪼개고 모아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으면 반드시 구경을 갔다. 그 시절 극장에 본 <카사 블랑카> <로마의 휴일> <사랑은 비를 타고> <황야의 7인> 같은 걸작은 지금 다시 봐도 가슴 절절한 감동을 안겨주는 수작이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특히 가족을 그린 작품은 유독 내 관심을 끈다. 비록 표현은 많이 못하고 살았지만 심중에 누구보다 깊은 가족애를 품고 살아온 까닭인 모양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되고 편한 동시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관계가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애니메이션계의 유명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트레이 파커는 “가족이란 공동체는 당신이 누구의 핏줄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는가를 깨닫게 만든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말처럼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주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이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내가 누구보다 힘들게 만드는 존재가 가족이기도 하다.
 
절친한 친구나 친분이 깊은 지인 관계는 기본적으로 서로 타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 애쓴다. 그래서 오히려 감정적 충돌 없이 대화가 잘 통한다. 또 정에 이끌리기보다 이성으로 판단하니까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반면, 한 지붕 아래 긴 세월을 함께 산 가족은 때로 가장 가까운가 싶다가도 때로는 가장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이인가 믿었다가도 과연 내가 상대의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호할 때도 있다. 부부 사이도 그렇고 부모 자식 관계도 그렇고 형제 관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 남자들의 경우 바쁜 사회생활에 쫓기 듯 살다보니 한 집안 내에서도 타인 같이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혼자만 겉도는 경우가 많다. 한 뼘의 거리가 한 자의 거리로 멀어지고 그 심리적 거리감은 점점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진다. 내 나이 세대는 그래도 아내들이 불량 남편들을 많이 참고 봐주었다. 늙어서 한방에 복수할 생각으로 혼자 부뚜막 칼을 갈 지언정 어린 자식을 키우고 사는 동안은 밖으로 도는 남자들을 보듬고 거둬주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더 이상 한국의 아내들도 참고만 있지 않는다. 가정적이지 않고 다정하고 좋은 남편이 못되면 가차 없이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적잖이 보아 왔다.
 
▲ 필자의 돌 사진
 
어떤 정신과 의사가 신이 만든 가장 따뜻한 인간관계는 가족이고 악마가 만든 가장 고통스러운 관계 역시 가족이라 정의 내린 글을 본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 수긍이 갔던 기억이 난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지상에서 ‘가족’이란 이름만큼 따뜻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처주기 시작하면 지상에서 가족만큼 가혹한 관계도 또 없다.
 
우리 집안은 그 세대치고 가족 구성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가난한 집안에 자식 많다고 없는 살림에 가진 재산이라고는 줄줄이 사탕 같은 자식들 뿐 이었던 시절, 우리는 사남매로 다른 집에 비하면 비교적 단출한 편이었다.
 
옛날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돌아가신 선친은 말 수도 적을 뿐아니라 조용한 분이셨고 어머니 역시 보통의 여인들과는 달랐다. 어린 시절 언문을 깨우쳐 책 읽는 것이 낙이었던, 그 시대 보기 드문 지성미를 갖춘 여성이었다. 밤 낮 없이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틈만 나면 시를 짓고 책을 읽는 것을 그 무엇보다 즐거워하시던 어머니였다. 그러니 동네 아낙들과 모여 앉아 지아비 허물 놀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여인네들과는 가족을 대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어린 자식이라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자식의 말은 그것이 투정일지라도 항상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아우들도 모두 욕심 없이 순박하고 선한 성품이었다. 특별히 가족 간에 살가운 정을 표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눈 뜨면 하루 끼니부터 걱정하며 지냈어도 가족 간에 전해주는 뜨뜻한 온기가 있어 사는 일이 그리 팍팍하지 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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