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 또 불러도 그리운 이름, 어머니 (10화)
부르고 또 불러도 그리운 이름, 어머니 (10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9.20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장 가족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 <어머니>

나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예전과 달리 소소한 일에도 화가 많고 눈물도 흔해졌다. 어려서부터 체격은 대장부인데 여린 감성은 계집아이라는 놀림을 자주 받았다. 그래도 요새는 정말 별 것 아닌 일에도 눈시울부터 젖어드는 경우가 있어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시를 찾아 읽은 후에도 한 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눈 속이 뜨거워져 혼이 났다. 돌아가신 모친을 향한 나의 사모곡(思母曲)과 어찌나 닮은 시인지 더욱 가슴 속을 내밀히 파고 든 모양이다.
 
▲ 어머님과 아버님
 
노년이 되니 정리해야 할 것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간다. 단지 물건들뿐 만이 아니다. 평생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도 점점 희미해지거나 등불이 꺼지듯 점멸해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것들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란 사실이다.
 
그 중 제일 가슴 아픈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지워져 가는 것이다. 세상 모든 자식에게 다 그렇겠지만 내 인생에서 어머니는 가장 특별한 존재였다. 외모도 성품도 모친을 고스란히 빼닮은 나는 그 덕에 평생 마음 그릇이 크고 인내심 강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인 나는 정작 어머니가 곁에 살아 계실 때는 당신이 걸어오신 고단한 일생의 짐을 다 헤아려 드리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운명하시던 날까지 시골 부모님의 살림살이와 건강을 챙긴 나를 두고 효자라고 추켜 세우지만 내 마음은 미처 더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만이 회한으로 남을 뿐이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에 담긴 절실함은 소중한 이가 곁에서 떠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맹점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시를 읽으니 어린 시절 자식들을 위해 자주 끼니를 거르고 밤새 길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올라 가슴이 시리다.
 
팍팍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온 몸이 부숴져라 일하면서도 책과 글쓰기를 즐기시고 어려운 주위 사람들 챙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던 어머니, 그때의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그때의 당신보다 더 늙어버린 이 초로의 아들이 삶의 무게에 지친 작은 체구의 어머니를 품 안에 따뜻하게 안아드릴 수 있을 것을, 가난이란 빛바랜 옷을 걸쳤지만 자식들에 대한 사랑으로 강인하게 빛나던 어머니의 두 어깨를 토닥여 드릴 것을, 두 번 다시 그럴 수 없는 현실이 한없이 허망하고 서글플 뿐이다. 죽음 앞에서 그 어떤 것도 후회일 수밖에 없다는 말은 진리인 듯하다.
 
이제 어머니가 나와 형제들에게 주신 그 아낌없는 사랑을 되돌려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이 생에서 내게 주어진 남은 날들 자애롭고 넉넉했던 어머니가 우리 형제와 이웃들을 사랑하셨던 그 방식으로 나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나눠주며 온 정을 베푸는 길 밖에 도리가 없다. 그것만이 아마도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평생 자신의 모든 욕망은 다 억누른 채 인내만 하며 살다 가신 어머니 인생의 길을 배우고 닮아가는 아들의 마지막 효도가 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