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도 삼킨 부부의 애틋한 사랑 (11화)
허기도 삼킨 부부의 애틋한 사랑 (11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9.2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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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가족
선친은 생전에 말 수가 없으신 양반이셨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에 대쪽같이 바르고 올곧은 성품 탓에 고향에서는 아버지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시절 아버지들이 다 그렇듯 워낙 말이 없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없어 평생 아버지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하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태산처럼 크고 우물처럼 깊고 거대한 옹벽처럼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분이라는 강한 믿음을 주신 분이셨다.
 
반면 어머니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으셨다. 몸이 재고 영민해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해내셨다. 정이 깊고 온화해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는 법이 없으셨다. 우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동냥 길에 나선 걸인들에게 정성껏 밥상을 차려 대접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비록 고향에 돌 밭 한마지기로 가지지 못한 옹색한 처지였지만 부모님은 남다른 교육 철학을 가진 분들이셨다. 평생 남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험한 얼굴을 보인 적 없는 아버지는 다툼을 싫어하셨다. 어린 우리들에게도 항상 “남에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굳이 싸워 이기려 하지 마라. 네가 옳다면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진정으로 이기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또한 자존심과 기개가 대단했던 분이라 남들 앞에서 절대 어려운 티를 내지 않으셨다. 우리 형제들에게도 “없는 티내며 궁상떨어서는 안 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최대한 더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라”라고 하셨다.
 
솔직히 어려서는 두 분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장 너무 배가 고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남에게 베풀라는 말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 말씀도 마찬가지셨다. 옳고 그름도 없이 무조건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들 삶이 그렇게 강팍하고 힘겨운데 이웃에게 정을 베풀고 인내하는 부모님 삶의 방식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철이 들면서 부모님이 고단한 살림에도 자식들에게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려 하셨던 삶의 덕목이 무엇인지 이제사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수선스럽지 않고 찬찬하고 담담한 성격들이라 겉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런저런 불편을 알아서 살피는 어머니의 손길이나 어머니의 고단함은 알아서 해결해 주시는 아버지의 깊은 속정은 어린 자식들에게도 전해졌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 세 끼 식사를 두 끼의 보리죽으로 간신히 때우던 시절이었다.
 
조상님 기제사가 있는 날은 겨우 모아둔 쌀을 섞은 밥으로 제사를 지냈다. 보통 새벽 1시 넘어 새벽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와 동생들은 제사 참석보다 이 제삿밥 때문에 제삿날이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이웃집들도 제사가 끝난 후 한 밤중에 제삿밥을 돌렸는데 한 번은 선잠이 들었다가 어머니가 제삿밥을 들고 찾아온 이웃집 아주머니와 말씀 나누는 소리를 듣고 잠이 확 깼다.
 
▲ 제주도 여행 중의 부모님
 
‘아, 제삿밥이 왔구나! 모처럼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여 들며 행복해졌다.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나지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는 아이들 굳이 깨울 거 없이 당신 먼저 챙기고 기운 내시오”
 
평소 먹을 것이 하나라도 생기면 자식들 입부터 챙겨 주시던 아버지셨다. 그 아버지가 모처럼 생긴 쌀밥을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나눠 먹이려는 어머니를 만류하며 어머니부터 드시라 재촉하신 것이다. 순간 밤낮없이 햇빛 아래서 일하시느라 까맣게 타들어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밤잠 잊고 길쌈에 허드렛일에 거칠어진 손마디와 여리고 작은 체구도 기억났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달달한 쌀밥 냄새가 연신 코를 찔러댔지만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부모님은 그 뒤로도 한 참이나 밥 한 공기를 앞에 두고 서로 먹으라며 입씨름하고 계셨다. 배는 점점 더 고프고 화장실도 급했지만 두 분 사이에 오가는 애틋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잠이 든 척 밤새 눈을 뜨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부부의 정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겉으로 온갖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어려움을 알아서 살피고 보듬어 주는 마음 말이다. 부모님은 평생을 그렇게 뜨뜻한 정으로 서로를 품고 사셨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천년의 노송처럼 뿌리 깊고 우직했다. 살아 생전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 살가운 말 한 마디 나눴을 리 만무하지만 긴 세월 두 분은 서로에 대한 약속과 의리의 마음을 잘 지켜오셨다. 또 부부의 정은 심은 대로 거둔다더니 일생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시던 그 마음 그대로 서로 의지하며 삶의 동반자로 지내시다가 부부의 인연을 마감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다보니 나 또한 나이 들수록 아내의 귀함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없는 효자 효부라도 악처만 못하다는 옛 말처럼 힘들고 아프고 외로울 때 곁에 남아 줄 사람은 아내와 남편 뿐 아니겠는가. 젊은 날은 사는 일에 바빠 여러 가지 부족함이 많은 지아비였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따뜻하게 아껴주겠노라 다짐 아닌 다짐을 하는 것이다. 역시 남자는 죽기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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