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청사 뒤편 얕은 동산 일원, 원삼국·삼국시대 고분 발견
예천군청사 뒤편 얕은 동산 일원, 원삼국·삼국시대 고분 발견
  • 예천신문
  • 승인 2020.09.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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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곽묘·매납 유구·석실묘 발견 … 경북북부 첫 사로국 양식 '눈길'

원삼국·삼국시대 예천지역 중심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발견돼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발견된 곳은 예천읍 대심리 497번지 일원으로 군신청사 뒤편 얕은 동산이다. 군에서 도로개설 사업을 하다 고분이 나오면서 문화재청에서 의뢰한 조사단((재)성림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원삼국 목곽묘 1기와 매납 유구 2기, 삼국시대 고분(석실묘) 2기가 발견됐다.


학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원삼국시대의 '사로국'(경주)의 무덤양식이 경북 북부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예천군은 당시 소국 '사벌국'(상주)에 속해 있었다. 한 석실묘에 여러 번의 추가 장이 이뤄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번에 발견된 고분(봉덕산 남쪽) 능선을 따라 10여 개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발견된 원삼국시대 '목곽묘'는 3~4세기 초엽으로 추정되며 출토유물은 승문타날 단경호·철부·철모·환두대도 종장판갑 등이다. 최초 노출 당시 장방형의 굴광선이 확인됐다.


1호 매납 유구(길이 1백35㎝, 너비 68㎝, 깊이 34㎝)는 1호분 남서쪽 봉토에 위치해 평면형태의 장 방향이다.


내부에는 갈색사질점토가 단일 층으로 퇴적돼 있고 바닥은 편평하며 타날문단경호 4점과 주변에서 씨앗이 발견됐다.


2호(길이 68㎝, 너비 66㎝, 깊이 21㎝)매납유구는 1호분의 남서쪽 봉토에 위치해 평면원형에 가깝다. 내부는 1호와 흡사하며 '타날문단경호' 1점이 나왔다.


삼국시대 석실묘 고분은 추정봉투 규모가 20m가량인 1호분의 북서쪽에 덧대어 2호분이 축조된 양상이다.


1호 석실묘는 직 경 20m의 원형분으로 추정된다. 안에는 옹관묘 1기가 배장묘로 조성됐다.


노출 당시 3 군데의 교란구덩이로 2매의 개석이 자리를 이탈했으며 유구는 도굴과 밭 경작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유실돼 잔종 상태가 불량했다. 매장 주체 부 주변으로는 벽석을 보호하기 위해 직경 40~60㎝가량의 할석을 갈색사질점토와 함께 채워 넣었다.


조사에서 최소 2차례 이상 추가 장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호 석실묘에는 배장묘인 옹관묘 1기,매장주체부는 횡국식석실묘이다.


시상((屍牀·입관하기 전에 시체를 얹어 놓는 긴 널)은 시차를 두고 3차례에 걸쳐 축조됐다. 1차 시상에서는 토기류 50여 점 철기류 50여 점이 출토됐다. 조사단은 1차 토기로 본 무덤의 최초 사용 시기로 5세기로 판단했다.

2차 시상에서는 청동 구술 10여 점 관정 10여 점, 3차 시상은 도굴로 인해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특징적으로는 매장주체부벽석의 주변으로 벽석 및 봉토를 보호하기 위한 적석이 추가됐다.


이와 유사한 구조는 안동 조탑리 고분군 1-2호와 4호 고분의 봉토 내 적석 된 경우다.


2차 석실묘는 조사지역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부에 위치한다. 직경 12m 가령의 원형분이다.


매장주체부는 황구식석실묘이다. 유물론 본 최초사용 시기는 5세기 6세기 초로 추정된다.


유구는 최초 노출 당시 장 방향의 묘광과 벽석이 정연하게 노출됐다. 북서쪽 장벽에 연하여 원형 시설물이 확인 됐다.


유물은 2차 관대 바닥에서 30여 점이 발견됐다.


이번 조사에서 나온 출토 유물은 약 200점으로 개·고배·단경호·대부장경호·연질웅·파수부옹·파수부배·환두대도·철촉·철모·철부·관정·금제이식, 환·금동제, 편·종장판갑·교구·재갈·등자·운주·편원어미형행엽 등이다.
(재)성림문화재연구원은 조사에서 "대심리 고분군은 원삼국~삼국시대에 걸쳐 예천의 중심 고분군으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경북지역에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예천 지역만의 특이한 묘제 형식으로 고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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