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미술관 건립 소식을 듣고
박서보 미술관 건립 소식을 듣고
  • 예천신문
  • 승인 2020.11.1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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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경(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연구팀장)

박서보미술관이 예천에 건립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 화단의 거목, 추상미술의 대표 작가 박서보의 미술관을 예천에 짓는다고? 그 가벼운 궁금증은 예천이 박서보 화백의 고향이란 말에 금세 사그라졌다.

대신 기억에 존재하는 박서보 화백과 예천 관련 데이터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상상을 거부하지 않으니, 그 자리에는 설렘과 기대감이 들어찬다. 엉뚱한 비약일지라도 그 상상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서 만났던 그의 작품과 어느 방송에서 봤던 그의 작업을 닮은 작업실 건축 그리고 예천 사이에서 형성된 묘한 일치감 위에서 피어난다.

그곳에서 어느 농부가 정성스레 갈아 놓은 고랑과 이랑을 발견하고, 긴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만들어낸 강줄기를 떠올리고, 과녁을 향해 수 없이 달려간 활이 가른 공기를 그려 본다. 그리고 또 화려한 햇살이 뿜어낸 신성한 소박함을 느끼고, 자연에서 정신의 존재를 마주하듯이 분주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를 초월한 듯한 절대적인 고요함을 경험한다.

박서보 화백은 1931년 예천군 은풍면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작가뿐만 아니라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하고, 미술운동가이자 예술행정가로 한국화단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한국현대미술의 선구자청이자 산증인으로 힘차게 달려왔다.

년 박서보는 기성 미술계의 아카데미즘에 저항하는 1956년 반국전 선언과 함께 화단에 데뷔한다. 이듬해 그는 한국아방가르드의 출발인 한국현대미술가협회의 1957년 전시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사 최초의 표현적 추상회화, 즉 앵포르멜(informal) 양식의 작가로 평가된다.

박서보 화백은 '해방 1세대 작가'로 20대 초반에 겪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내면화하는 앵포르멜 작업의 실험을 이어가며 <원형질> 시리즈와 한국성, 민족성을 담은 <유전질> 시리즈그를 발표하면서 한국화단에 추상미술 운동의 바람을 일으킨다.

는 1967년부터 '그리는 방법'이라는 의미의 <묘법(描法)> 시리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기하학적 추상을 이어나간다. 이 예술적 실험은 반복적인 긋기로 그리는 것 자체의 탐구이다. 회화의 본질에 대한 이 연구를 주된 주제로 삼아 그는 평생 작업의 화두로 이어갈 중요한 기점을 맞이한다.

박서보 화백은 회화의 본질을 천착하는 근본주의자로서, 서구미술을 모방 수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찾고자 했다. 그는 단색화 태동을 이끈 산파로서 단색화의 원류인 1970년대 초기 <묘법>에서 유백색의 물감으로 칠한 캔버스에 연필로 반복해서 선을 긋는 방식으로 한국적 모노크롬의 절제와 여백을 실현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묘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묘법>은 마음을 비우는 행위야. 선을 반복해서 긋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행위의 호흡만 남은 상태, 무위자연의 이상태에 이를 때 진정으로 화가와 작품이 하나가 되는 거지."
후 1980년대 한지와 모노톤의 색채를 사용한 <묘법> 시기에는 작가의 반복적 긋기 행위로 한지가 밀려 화면의 마티에르로 드러난다.

화면은 작가의 무념무상의 행위와 물성의 물아일체를 증언하는 장이 된다. 1990년대 손의 흔적 대신 막대기 같은 도구로 한지를 밀어내며 단순화된 직선의 요철을 만들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서보 화백의 단색조 묘법은 다채로운 색을 입는다. 그가 공기의 색, 자연의 색, 치유의 색이라고 일컫는 색을 입힌 <묘법>은 회화의 색채가 전하는 시각적 즐거움을 통해 작가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위안과 감동을 전한다. 방법의 변주가 끊임없이 시도되는 과정에 세계적으로 한국미술의 단색화 열풍이 불고, 이 강미렬한 흐름에서 박서보 화백은 중심에서 한국미술을 견인한다.

술관을 짓는 것은 멋진 외관을 가진 건물을 하나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일은 과거를 전승하고, 현재를 사유하며, 미래를 교육하는 것이기에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다. 그렇다면 인구 5만 5천여 명의 작은 고장 예천에 박서보미술관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박서보 화백은 한국추상미술을 발아한 도전자로 한국현대미술운동의 한선두에서 변화와 정립의 시대를 이끈 그의 인생과 화업은 한국미술사의 궤적과 함께한다.

국적 모더니스트로서 끊임없이 전위에 도전한 그를 두고 아트인컬쳐 김복기 대표는 "박서보라는 이름 석자에는 한국 현대미술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195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고, 미술사학자 권영진이 "이제 한국미술은 비로소 굳건한 원로와 튼튼한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라고 말한 것에서 그의 미술사적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박서보 화백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도는 더 이상 한 예술가를 에워싸는 한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욱이 그 시도가 작가의 고향에서 이뤄진다면 더 없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작가를 연구함에 있어 고향은 그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파악하여 작가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열쇠로 사용된다.

어느 한 도시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통해 도시를 짐작한다. 예컨대 '충절의 도시, 양반의 도시, 맛의 도시, 예향의 도시, 과학의 도시' 등과 같은 도시의 역사를 압축하고, 도시의 지향점을 설정한다. 예천도 마찬가지다.

예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한 도시를 다양한 모습과 이유로 기억하지만, 정서적으로 각인된 기억은 영원히 함께하며 불현듯 현재처럼 나타나 그 도시를 그립게 한다. 학창 시절 여행했던 프랑스 남부 어느 작은 도시, 소나기를 피해 들어갔던 성당이나 한낮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 멈추었던 공원, 혹은 관광안내지도에 상이끌려 무심코 발걸음을 들여놓았던 미술관 등에 관한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도시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와 사람이 늘 함께한다.

상해본다. 훗날, 박서보미술관에서 또 다른 미래의 화가가, 건축가가 성장하고 그 무엇이 되었든 상상하고 꿈을 꾸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찾아오는 장소로서 미술관.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한다는 의미는 그것을 통해 이뤄질 많은 긍정적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포함한다.

그를 보기위해 외부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도 중요하겠으나, 곁에 두고 미래를 꿈꾸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힘. 그래서 박서보미술관이 예천에 건립된다는 소식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문화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박서보 화백이 태어난 이곳에서, 그의 예술적 감성을 키웠던 이곳에서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바라보고 탐구했던 이상의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서둘러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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