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진 솜씨로 옷 수선 36년
야무진 솜씨로 옷 수선 36년
  • 예천신문
  • 승인 2021.05.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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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 동본리 까치수선 주금옥 씨
▲주금옥 씨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 365일 수선집 문을 엽니다.
▲주금옥 씨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 365일 수선집 문을 엽니다.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음반에 수록된 민중가요 '사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1960∼1980년대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담은 이 노래에 '미싱'이 등장합니다. 미싱은 우리말로 재봉틀입니다. 영어의 소잉머신(Sewing Machine)에서 머신이라는 말을 일본식 발음 '미싱'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지요.
그 시절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재봉틀과 봉제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숨은 역군으로 평가받습니다.
재봉틀은 당시 가정의 생활필수품이기도 했지만, 1990년대 기성복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답니다.
예천읍 동본리 새마을금고 뒤 샛골목에 둥지를 튼 '까치수선'. 이곳에서는 추억의 재봉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온전히 발로 돌리는 발틀을요.
주인 주금옥(79) 씨의 체취와 손때가 묻은 지 36년 된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끄떡없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아주 잘 돌아갑니다.

주씨의 고향은 아리랑으로 유명한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입니다. 타인의 잘못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고, 살길 찾아 가족 모두 예천으로 온 것입니다. 벌써 40년 저쪽의 세월입니다.
슬하에는 남편 이관영(80) 씨와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 교육을 번듯하게 시키지 못한 미안함이 오래 묵은 체증처럼 마음을 짓누른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식들 모두 가정을 꾸리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제 몫을 다해 더없이 기쁘답니다.
4평 남짓의 단출한 옷 수선집. 자르고, 깁고, 줄이고, 늘이고…. 이곳은 단순히 솜씨를 부려 일감을 처리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노년의 무료한 시간을 도려내고, 꿰매고, 박음질하는 역할이 훨씬 큽니다.

오랜 단골과 이웃 친구들이 찾아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합니다. 별것 아닌 데도 숨넘어갈 듯 웃을 땐 사춘기 소녀들 같고, 포르르 날아오르는 한 무리의 참새 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주금옥 씨는 365일 가게 문을 닫지 않습니다. 돈에 욕심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랍니다. 젊었을 땐 제법 살림에 보탬이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1회 수선비라야 고작 2~3천 원. 월세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게 몇 푼 안 됩니다.
딸들이 "그만두고 건강 챙기시라"며 연일 성화를 부리지만, 주씨는 이곳이야말로 병원이고 치료 약이라 생각한답니다.
"이 나이에 무슨 특별한 소망이 있을라구요. 그저 가족들 건강이 최고지요."
읍내 시가지에서 요리조리 골목길을 돌면 나타나는 '까치수선'. 그곳엔 야무진 수선 솜씨를 가진 주금옥 씨가 있습니다. 우리들 기억 속의 할머니와 어머니처럼 발판 위에 두 발을 올려 가만가만 재봉틀을 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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