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 행복 되찾아//서양화가 권덕휘(예천읍) 씨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 행복 되찾아//서양화가 권덕휘(예천읍) 씨
  • 예천신문
  • 승인 2022.11.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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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넘어 안동대 미술학과와 대학원 졸업 …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며 끊임없이 정진
▲ 그림은 자신을 무척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행복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권덕휘 작가.
▲ 그림은 자신을 무척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행복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권덕휘 작가.

"제가 하고 있는 그림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받고 수십 번의 단체전과 두 번의 개인전까지 열면서 그림이라면 좀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50이 넘은 나이에 안동대학교 미술학과(서양화전공)에 편입한 권덕휘 작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맞이했다.

"뭘 그려라 이런 건 없고, 계속 뭘 그릴 거냐고 물어보는데, 어떤 학생은 사람들이 만날 때 서로 주고받는 내면세계를 그리겠다는 둥, 이불이 주는 감촉과 행복감을 그릴 거라는 둥... 속으로 얘들이 미쳤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초간정이 있으니깐 초간정을 그리고 장미가 피니깐 장미를 그렸던 저로서는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못 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색이 어떻고 터치가 어떻고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한 무언가를 배울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접한 미술의 세계는 너무 달랐다.

"외국의 어느 작가가 자신의 피를 매일 조금씩 모아 두상을 만들었는데 그게 얼어 있어야 하는데 전기가 나가서 다 녹았답니다. 그게 미술인가 싶은데 미술이라고 하더라구요."

거대하고 넓은 미술의 세계, 예술의 세계를 접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은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고 느낄 만큼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결론이 안 나고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 벌써 졸업이고 끝났다고 해서 대학원을 갔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을 갔는데 거기선 또 다른 물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뭔데? 네 것은 뭐고 너의 내면은 어떤데? 계속 묻는 겁니다. 말하자면 제가 탑을 그려 놓으면 그래서 이게 뭔데? 이렇게 질문을 하는 식이죠. 탑을 그렸으면 탑이지 왜 뭐냐고 묻지?" 이렇게 고민이 이어집니다."

권덕휘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정신과 개념, 미학을 찾아야만 했다.

"다른 사람보다 백배는 더 고민하고 10배는 더 작업량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긴 고민의 시간을 지나다 권덕휘 작가는 어린 시절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던 문살과 마주하게 되었다.

"어릴 때 혼자 방바닥을 빙빙 돌면서 문살을 따라 그리며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컴컴한 방에 빛이 들어오면서 하나씩 문살의 형태가 드러나던 기억, 그때 보이던 먼지와 그 냄새, 신비했던 느낌은 아무도 나에게서 뺏어갈 수 없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문살은 권덕휘 작가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

"주변에서 돈 되는 초간정이나 계속 그리라는 소리도 하고, 얼마 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고 하자 이런 것도 전시가 되느냐고 묻더군요. 추상은 끝없는 자기의식과의 밀당이고 자기 내면과의 조화입니다. 자기 안에서 끄집어낼 게 없으면 다시 손끝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러면 작가로서 오히려 비참하고 슬픕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한 번 알아버린 세계를 포기할 수 없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가고 싶다.

"작가들은 굉장히 주관적으로 작업합니다. 그런데 작품이 전시장으로 가는 순간 작가는 사라집니다. 관객역시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작가의 글이나 평론이 있다면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감상을 위해 꼭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자신과 맞는 작품을 마주하고, 작가를 마주하면 그만인 거다.

"저는 굉장히 우울한 시기에 그림을 만나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림을 통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통해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권덕휘 작가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리고 또 가르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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