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면 원류리 홍현기 화백/ '질문과 사유가 작가의 체계를 만들어...'
용문면 원류리 홍현기 화백/ '질문과 사유가 작가의 체계를 만들어...'
  • 전동재
  • 승인 2023.06.08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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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미술은 달라. 감성과 멘탈이 들어가야 미술이지, 미학적 자기 컨셉(콘셉트)이 안 들어간 것이 무슨 미술이야? 그건 그림이지. 난 그림 안 그리고 미술하고 싶어.”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 앞에서 ‘이게 무슨 그림이야?’라고 묻는 많은 사람의 질문은, 홍현기 화백의 말에 따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미술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어떤 화가든 자기 작품에 체계가 있어야 해, 수채화를 하든 오일페인팅을 하든 나무를 만지든 돌멩이를 만지든 그 중심에는 기본적인 체계가 있어야 해.”
홍현기 화백은 ‘질문과 사유가 작가의 체계를 만든다’고 말한다.

“왜 질문을 하냐고? 질문을 안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하지. 아니 질문을 안 하고 뭘 그려?”

그렇다면 60년이 넘는 시간을 붓을 잡아 온 홍현기 화백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말하자면 꽃이 피었어, 그러면 저 꽃은 어디서 왔지? 어쩌다, 어떻게 와서 이쁘구나, 하는 감정을 내게 불러일으키지? 저 빨간 색은 항상 빨갈까? 조금 있으면 시들해지고 색도 변하는데, 그러면 실상은 뭐고 허상은 뭐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도 당연한 순리에도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품어가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가며 홍현기 화백은 자신의 체계를 만들고 작품을 만들어갔다.

“난 그걸 ‘신화의 내재율’이라고 말해. ‘신화’하면 사람들은 그리스로마 신화나 단군신화를 떠올리는데 난 그게 아니고 알 수 없는 그 원초적 에너지를 신화의 힘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홍현기 화백은 질문하고 생각하며 만들어간 작품 속에서 답을 찾았을까?

“답? 답은 모르지. 죽어도 모를지도 몰라. 정답이 없을지도 모르고, 있는데 못 찾을 수도 있지만 평생 매달리는 거지. 막말로 갈 데까지 가보는 거야.”

작가의 질문과 사유의 체계는 비록 관객이 알지 못해도 치열하게 생각하고 질문한 작가의 작품은 힘을 느끼게 해준다.

“왜 흰 종이에 검은 점을 찍냐고? 세상의 뭘 그리든 형상을 그리려면 가장 작은 단계가 점이야.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입체가 되는 거지.. 그런데 점은 형상이 없을까? 인간의 눈에는 아주 아주 작은 점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시력을 가진 다른 무언가의 눈으로 본다면 육각형이든 오각형이든 다른 형상을 가지고 있는 않을까? 그럼 점은 없는 거고 그냥 상징일뿐이지 않을까?”

홍현기 화백의 질문은 작품 안에서도 계속된다.

“내가 평면에서 물감을 가지고 그리는 마지막은 흰 종이에 흰 점을 찍는 거야. 사람들은 꼬라지(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해. 그런데 난 그렇게 하고 싶어. 검정색 가지고 놀 때는 형상이 쫙쫙 나오는데 흰 종이에 흰점은 뭐야? 그런데 검정색에 물이 조금만 들어가도 묽어져. 더 더 더 마직막으로 많이 들어가면 검정색은 어디로 가버려. 사람 머리도 까맣다가 나이 먹으면 하얘져...그럼 검은색과 흰색은 같은 거야 다른 거야?”

질문이 이어지고, 그 끝없는 질문이 또 작품을 하게 한다.

“내가 대창고등학교 미술대학 1호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시절 자신의 작품을 재밌다고 말한 미술대학 조교에게 재미가 뭐냐고 되물었던 홍현기 화백에게, 그래서 작품을 하는 게 재밌는지 물었다.

“재미?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는 그냥 축구선수, 야구선수가 연습하듯 기분이 나빠도 하고 좋아도 하고 재미가 있어도 하고 없어도 하는 거야.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안 하는 건 아마추어의 세계야.”

7백점이 넘는 회화작품 말고도 3천 점이 넘는 지팡이와 5천 점이 넘는 모필드로잉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깊고 넓어지는 작품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백남준이 관객은 위대하다고 했지. 나도 그 말은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작품이 아냐. 작품이라는 명찰을 달아주는 게 관객이야.”

치열한 질문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을 큰 고민 없이 마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관객이 된 순간이 참으로 호사스럽다. 그 호사를 독자들도 한 번쯤, 적극적으로 누려봄은 어떨까? 권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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