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번호: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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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신문
  • 승인 199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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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 : 희망약국 앞 무허가 종묘사
호수번호 : 7272
내용 : 삼거리 `희망약국' 앞 난전이 벌어진다. 보따리에선 배추씨 무씨 아욱씨 아주까리씨 삼씨, 잎담배에 당귀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쏟아진다.
장돌뱅이끼리 마수걸이 인사 잊지 않는다. 신식 종묘사에 밀려 이제는 손님구경이 수월치 않다. 말린 무화과 같은 입을 오물거리는 한 노파, 누런 옥니를 보이며 하회탈처럼 웃는 한 노인이 무씨 반 줌과 한 묶음의 잎담배를 사갔을 뿐이다.

일광욕을 즐기는 양 씨앗들은 이리저리 몸을 트는데 성미 급한 한 씨앗이 행여 싹이라도 틔울까 볕이 몸을 사리고 있다.

씨앗의 환(還)을 꿈꾸며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약국안 시계가 한시를 가리킨다. 담배 한 개비로 허기를 막으며 서 있다. 자전거의 삼천리표 글자도 흔들린다.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킨다. 그는 좀처럼 팔리지 않는 꿈을 매만지며 고개를 떨군다. 균형 잃은 약사의 걸음이 봉투 앞에 멈춘다. 그는 여전히 씨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약사가 건네준, 알싸한 박카스 노란 액속에 애간장 타는 그의 뒷모습이 섞여 넘어간다. 시계가 여섯 시를 가리킨다.

還의 길을 찾아주지 못한 씨들을 다시 품고 삼천리표 자전거에 앉는다. 그가 종묘처럼 떨궈놓은 새끼들은 떨이한 간고등어 대가리를 뼈까지 야무지게 발라먹을 것이다. 방죽 지나 흥얼대는 울고 넘는 박달재에 자전거머리도 흥얼흥얼 박달재를 넘는다. 검은 대지에 뿌려진 씨처럼 푸른 별들이 하늘에 흩어져 있다.

<예천읍 청복2리 김종섭 하옥남 씨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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