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함께한 시묘살이
호랑이와 함께한 시묘살이
  • 예천신문
  • 승인 2011.04.2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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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효자 도시복(都始復)·4

이야기 서사시(5)

예천군에서는 1978년 예천공설운동장 건너
보문 통로변에 도시복의 효자비를 세웠다
그 뒤 도로 확장으로 상리면 용두리
그의 생가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그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효동이·효순이 캐릭터를 개발 보급하고 있다

1882년 암행어사 이도재(李道宰)가
예천을 방문해 도시복의 효행을 조사했으나
어수선한 때라 임금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
임금이 전국의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추천하라는 명을 내려 각처에서 수합하니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이렇게 많다면
어찌 나라가 혼란스러운가
임금은 노하여 거짓으로 꾸몄을 테니
모두 태워 버리라고 명했다
불에 태우던 중 거센 바람이 불어와
3편이 하늘로 날려 다시 떨어졌다
많은 행적 기록문이 타고 3건만 남았다

◇ 김 영 진 (보문면 출행/ 시인, 수필가/ 성서원 회장/ 새벗 발행인)
◆시작노트
하늘이 진실을 알고 가려준 것으로 「명심보감」 속편에 등재되어 청소년들에게 효행을 알리는 수신서 역할을 하고 있다.「명심보감」은 유교적 심성 교육을 위해 마련된 책. 이 책에 담긴 효행편에서 공자의 말을 소개한다. “효자는 어버이 섬김에 있어 기거하심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하며, 병드실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기본 윤리인 삼강오륜과 그 실천 윤리를 가르친 말씀 가운데 하나. 도시복의 효행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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