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날
장 날
  • 예천신문
  • 승인 2013.01.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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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어둠이 귀가(歸家)한 시장길에
발가벗은 몇 톨의 참깨가 누워
조을고 있다.

서로의 공복(空腹)을 사고 팔던
붉은 주먹들이
죽음의 짐짝처럼 실려 나갈 때
이미 우리네 생활은
헐값으로 거래된 한다발의 상품(商品).
닷새동안 도망갔다 실려온 얼굴들이
누렇게 뜬 한나절을 쪼아 뜯으며
방긋 웃고 있다.

다사로운 태양이
반쯤 열린 문틈으로 빠져 오다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과일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어둠이 침략한 들길에도
발가벗은 몇 톨의 참깨들이 누워
조을고 있다.

 

◇ 정의홍 시인(1944∼1996)
·개포면 갈마리 출생
·196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밤의 환상곡」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 저서 「현대시작품론」(공저), 「정지용의 시 연구」. 대전대 국문과 교수 역임, 1996년 교통사고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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