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첫 쥐날 벌이는 농촌 풍속'
'정월 첫 쥐날 벌이는 농촌 풍속'
  • 예천신문
  • 승인 2013.04.1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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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

◇ 정희융 (예천문화원장)
● 세시풍속이야기(74)

요즈음 대형산불로 인해 많은 삼림(森林)이 잿더미로 변하고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보는 일이 적지 않다.

불(火)은 인류 역사 이래 불가원 불가근(不可近不可遠)의 존재이다. 멀리 할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불이다.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에 이어 쥐불놀이를 한다. 쥐불놀이는 논이나 밭두렁에 불을 붙이는 정월의 민속놀이로 음력 정월 첫 쥐날(上子日) 밤에 농촌에서 벌이는 풍속이다.

해가 저물면 마을 마다 들로 나가 밭둑이나 논둑의 마른 풀에 일제히 불을 놓아 태운다.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병이 없고 재앙(災殃)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날 쥐불을 놓는 까닭도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害蟲)의 알이나 쥐를 박멸하여 풍작을 이루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쥐불의 크기에 따라 풍년이나 흉년, 마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기도 하는데 불의 기세(氣勢)가 크면 좋다고 한다.

자정이 되면 각자 마을로 되돌아가는데 질러놓은 불은 끄지 않는다.

현대에서는 산불의 위험 때문에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특히 밤에 아이들이 기다란 막대기나 줄에 불을 달고 빙빙 돌리며 노는데 밤에 불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壯觀)이다.

쥐불놀이를 한자어로 서화희(鼠火戱)라고도 한다.

쥐불놀이에 깡통이 쓰여진 것은 한국전쟁이후 일반화 되었으므로 전통민속놀이로 깡통불놀이를 쥐불놀이로 설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하지만 옛날에는 쥐불놀이에 쑥방망이를 사용하였지만 최근까지는 대개 바람구멍이 숭숭 뚫린 빈 깡통을 사용하였다.

깡통의 양쪽에 구멍을 뚫은 다음 철사로 길게 끈을 매단다. 깡통 안에 오래 탈 수 있는 장작개비 조각이나 솔방울을 채운 다음 볼쏘시개를 넣고 허공(虛空)에다 빙빙 돌리며 논다.

저마다 불을 붙여 들고 빙빙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그러다가 달이 올라오면 `망월(望月)이야'를 외치며 논, 밭두렁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어떤 지방에서는 이 놀이를 할 때 마을 소년들이 둑을 경계로 두 패로 나뉘어 한편에서 불을 놓으면 다른 한 편에서는 불을 꺼나가는 경쟁을 하기 때문에 걸과적으로는 이긴 쪽 마을의 쥐가 지는 쪽 마을로 몽땅 쫓겨가게 되었다.

따라서 이 쥐불놀이에 이겨야 그 마을 농작물이 해를 입지 않아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타고 남은 재가 다음 농사에 거름이 되어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소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쥐불놀이를 하게 되면 여자의 경우 밥을 할 때 치맛자락을 태우지 않고 남자는 담뱃불에 옷을 태우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 밖에 여자들이 아주까리 대에다 머리카락을 매달아 불을 붙여들고 집 주위를 “쥐 짖자. 쥐 짖자” 하고 외치며 돌아다닌다.

이것은 쥐는 눈이 밝기 때문에 항상 밤에만 활동하므로 그 눈을 불로 지져 쥐의 눈을 멀게 해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자는 일종의 주문인 셈이다.

쥐불놀이는 단순한 정월놀이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건강한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다.

즉 마른 풀을 태워서 풀잎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과 잡균, 유충 따위를 태워 없애고 언 땅에 온기(溫氣)를 주어 새풀이 잘 돋아나게 하려는 과학적인 사고가 담겨 있다.

따라서 곡물의 병충해를 그만큼 줄일 수 있으니 농사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잡균을 태워죽이니 위생, 방역의 측면에서도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산불을 염려하여 금지한 후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놀이가 되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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