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마, 내가 꼭 지켜줄게"
"엄마 걱정마, 내가 꼭 지켜줄게"
  • 권오근 편집국장
  • 승인 2013.05.16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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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여고 3년 명세화 양 … 투병 중인 엄마대신 식당일 도맡아

▲명세화 양이 학교에서 서둘러 돌아와 설거지를 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외숙모가 명세화 양과 여동생을 입양'
`사회복지사 꿈 이루고 싶은데 여섯 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
`암 보험 하나도 들지 않아 수술비, 항암치료비 막막'

 

내 이름은 명세화. 예천여고 3학년이다.

13일 오후 무작정 예천신문사를 찾아갔다. 어떡하든 엄마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난 4월 중순 하혈이 심해져 안동의 한 병원을 찾았다. 거기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믿을 수 없어 서울대학병원에서 다시 조직 검사를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 악성 종양이었다.

암세포가 임파선, 직장에까지 전이된 위험한 상태. 5월 23일, 수술 날짜가 잡혔지만 수술비와 항암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

엄마 이름은 명민숙. 서른다섯 살인 엄마는 본래 나의 외숙모였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이혼했다. 일곱 살 때부터 지금의 엄마랑 함께 살았다. 엄마는 조카인 나를 친딸처럼 예쁘게 키웠다. 3년 뒤 재혼 한 친엄마를 따라 가던 날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재혼한 친엄마와 계부는 자주 다퉜다. 그 집에서 나와 여동생은 천덕꾸러기였다. 계부의 매질과 핍박을 견딜 수 없어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그때 지금의 엄마가 등대 불빛처럼 떠올랐다. 엄마와 우리 자매는 그렇게 다시 가족이 됐다.

엄마는 3개월 전 법원 판결을 받아 조카인 나와 여동생을 입양했다.
내 이름 세화는 `밝은 내일’이란 뜻으로 엄마가 어느 스님께 부탁하여 지어주셨다. 슬픔과 고통뿐이었던 본래 이름은 기억에서조차 까맣게 잊으라고…….

내 꿈은 사회복지사다. 엄마가 나와 여동생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처럼 나도 사회복지사가 되어 불우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꿈을 뒤로 미뤘다. 엄마의 완쾌가 최우선이다.

엄마는 남편도 없이 아이 셋(초등6, 초등5, 4살)을 키우다 나와 여동생까지 맞아들였다. 경남 마산에 살다 3년 전 예천으로 온 엄마는 예천읍 남본리에서 국밥집(바보온달)을 하고 있다. 장사가 신통치 않아 점포세, 전기세 등 이것저것 내고 나면 정말 여섯 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나는 요즘 아픈 엄마를 대신해 음식을 만드는 일부터 마무리까지 식당일을 맡아서 한다. 서울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삼촌(엄마의 오빠)이 내려와 도와주시지만 학교생활과 병행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행히 삼촌이 대출을 받아 급한 빚은 어느 정도 갚아 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엄마의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병원비 마련이 걱정이다.

나는 매일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 불쌍한 엄마를 살려 달라고. 우리 여섯 가족의 행복을 앗아가지 말라고……. 내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아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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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자궁경부암으로 암세포가 임파선, 직장에까지 전이된 엄마를 살리고 싶다며 예천신문사를 찾아 온 명세화 양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예천신문 독자 여러분께서 1만원씩만 후원해 주셔도 이들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 후원 계좌 〉
  ◆KB국민은행 865701-01-322569(예금주 명민숙)
  ◆농협 351-0598-1653-73(예금주 명세화)
  ※후원금은 예천신문사(☎652-0324∼5)를 통해 전달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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