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은 우리를 사로 잡아
불상은 우리를 사로 잡아
  • 예천신문
  • 승인 2002.10.1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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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을 다녀와서(2)>
거기서 본 석조미륵보살은 동양에서 제일 큰 석불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법주사에 있던 불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돌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안정감이 있어 보이고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우리 나라의 도자기처럼 편안했다. 사실 법주사에 있던 그 불상은 처음에는 우리의 눈을 사로 잡았을지 모르지만, 계속 보다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하지만 관촉사에 그런 석불이 있었다니 나는 웬지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도착한 낙화암은 그야말로 내 눈에 쏘옥 들어왔다.

삼천궁녀가 뛰어 내렸다는 전설이 서린 낙화암 내려다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낭떠러지였다. 나는 정말 뛰어 내릴 당시의 마음이 어땠을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낙화암을 다녀와서 우리는 곧장 숙소로 갔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피곤해서 그런지 나는 수학여행 마지막 밤을 그냥 그렇게 흘려 보냈다.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첫날의 생기 넘치던 모습과 달리 아이들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잠을 잤다. 나도 피곤해서 눈을 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들판이 펼쳐졌고 대규모의 포도농장도 보였다. 그렇지만 곳곳에 보이는 수해현장들, 유실된 길, 토사로 뒤덮인 밭, 단잠을 잤던 내가 미안해 질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수재민들은 지금쯤 잠자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텐데….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공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공산성이 차지하는 지역이 넓어서 한참 동안을 다녀야 했다. 한 1시간 정도 올라간 뒤에 다시 입구로 되돌아 오려고 길을 찾았다. 그런데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서 어떤 마을로 나왔다. 우리는 당황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간신히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피곤해서 창가에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태까지 우리의 수학여행 취지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수학여행 취지는 바로 `백제 문화권 체험'이었다. 국사 책에서 보고 배우던 `백제금동대향로'를 부여박물관에 가서 보았다.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특히 백제와 연관이 많았다는 일본 사람들을 공주박물관에서 많이 마주쳤는데 그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보여 주어서 너무 뿌듯했다.
옛말에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사실 국사시간에야 그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수학여행으로 인해 백제 문화재에 대해서 조금은 안 것 같다. 그리고 또 이것 말고도 우리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팔려 간 것이 많다는데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2학년 9월에 떠난 잊지 못할 수학여행, 태풍피해의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고 전라도라는 곳의 백재문화권 체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한층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신선용, 은풍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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