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 율은공파 미호문중 모듬 벌초
김해김씨 율은공파 미호문중 모듬 벌초
  • 예천신문
  • 승인 2016.08.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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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시 우  ·보문면 출생, 율은김저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예로부터 사자(死者)를 경외하고 장례를 정중하게 모시고 묘(墓)를 관리하는 치산을 중요한 효행의 하나로 삼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다.

 치산은 대개 한식 때 떼(잔디)를 갈아입히는 개사초(改莎草)와 추석 전에 행하는 벌초(伐草)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벌초는 입추와 백로 사이인 처서를 전후해서 시행한다.

 이는 처서를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풀도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처서를 벌초의 적기로 하되 추석을 넘겨서는 자손의 도리를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금년은 처서가 8월 23일이고 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개별 벌초를 감안해서 선대의 문중 벌초를 앞당겼다.

 원래 파조를 비롯한 문중 선산의 선대 벌초는 산하에 거주하는 후손들의 몫이었으나 산하의 후손 중 젊은이들은 대개 생리를 따라 먼 곳으로 떠나고 70이상 고령의 노인들이 해마다 힘겨운 일(벌초)을 감내해 왔었다.

 이에 대한 송구함과 고향을 지키는 이른바 산 조상인 노인들에게 대한 도리가 아니란 생각에서 서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한번 해 보자고 서울 거주의 청장년들이 뜻을 모아 이번에 실행하게 된 것이다.

 10여명의 서울·경기지역 후손들이 새벽 5시에 개인승용차로 출발하여 보문면 미호리 선산에 모인 것은 7시 30분이었다.

 조용하게 끝내려고 벌초 장비까지 모두 갖추어 왔지만 이 소식을 들은 어른들이 먼저 나오셔서 요즘 세태에 참 보기 드문 일이라고 무척 대견해 하면서 뜨겁게 반겨주셨다.

 무엇보다 우애와 숭조위선을 강조하는 백 천번의 말 보다 이러한 모듬 벌초를 통하여 한 핏줄로서 친족 공동체 의식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더 값진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8월 한가위를 앞두고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모여 공동으로 파조를 비롯한 선대의 선영에 벌초하는 것을 '소분(掃墳)' 혹은 '모듬 벌초'라고 말한다.

 이번 모듬 벌초를 잠잠하게 지켜보시던 산하의 노인분들 왈 "참으로 장하이 요즘은 부조(父祖)의 벌초도 하지 않으려는 세태에 먼 조상의 벌초를 위해 그 먼 길을 이렇게 새벽같이 오다니 더군다나 모든 장비까지 갖추어 객지에 있는 후손들이 이렇게 벌초를 하는 일은 우리 생전에는 처음 있는 일일세, 참으로 자랑스럽고 고맙네......" 정이 묻어나는 노인분들의 찬사와 감격적인 표정과, 그리고 예초기의 힘찬 굉음에 더위 따위는 쉽게 날아가 버렸다.

 9시 30분이 되니 70대 후반의 종부께서 보리빵과 냉·온 커피, 음료수 등 새참을 준비해 오셨다.

 누군가의 입에서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이네" 라는 탄성과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더위를 식히는 청량이었다.

 사실 이 일을 추진하면서도 과연…? 하는 우려와 염려를 떨쳐 버릴 수 없었으나 이렇게 모두 한마음으로 행하는 열정적인 벌초로 깨끗이 정리된 선영을 바라보니 말할 수 없는 보람과 즐거움이 가슴 뿌듯하게 녹아들었다.

 예부터 부조에 대한 효행은 범인도 할 수 있지만 먼 조상에 대한 효행은 보통사람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모듬 벌초를 통하여 온 문중의 희망이 보인다는 문중 원로 어른들의 과분한 찬사와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효행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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