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번호: 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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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신문
  • 승인 199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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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 : 오래된 항아리
호수번호 : 9625
내용 : 그 집,
그 집 뒤란에 오래된 항아리
시간이 고여 찰랑거리고
산새들 내려와 목을 축이고
보름달 머물다 노란 알 하나 낳고 갔었다
달의 행로를 따라 고샅길 생겨나고
그 길 쫓아 1톤 트럭 한 대 거슬러 올라와 봄을 하역하고 간 후,
곳곳에 피어나던 꽃
마당에, 뒤뜰에, 외양간에, 부엌에, 뒷간에, 지붕에, 안방에, 바람벽에,
그 집 빼곡이 채우고,
읍내 가는 먼지 많은 길로 나섰다가
차마 다리 건너지 못하고 강둑 서성이다 시들었었다

그 다리,
꽃잎은 강물에 실려 마을을 돌아, 폐교를 돌아
손금 위로 흘러 드는데
밤마다 건너는 교각만 남은 다리
수시로 헛딛어 무릎팍 깨지는 교각만 남은 다리
강물 뚝!뚝! 흘리며 돌아오는 새벽 그 건너엔
꽃들이 주인인 집 한 채 있고
그 집 뒤란, 오래된 그 항아리 노란 알 하나 여전히 품고 있다

<최을원,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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