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향으로 (1화)
다시 고향으로 (1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7.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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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고향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말 수가 적은 편이었던 나는 아이들과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니기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한창 모국어를 배울 나이에 일본에서 살아야했던 가정사까지 겹쳐 말투가 어눌하고 타고난 말재간까지 없었다. 그런 형편이니 언변으로 아이들의 인기를 얻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친구가 없으니 외톨이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고 자연히 책과 함께 할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어린 소년에게는 다소 버거웠을 외로움의 시간들은 오히려 내적 성장과 사유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독서습관은 청소년기에 한층 깊어져 한 번 손에 책을 잡으면 밤잠을 잊을 정도의 문학 소년이 되었다. 그 시절 세계 명작이라면 빼놓지 않고 탐독했는데 그 중 미국 작가 토마스 울프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책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떠난 지 10여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은 주인공이 막상 산업화 열풍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기억과 너무 달라진 고향과 사람들의 변화에 환멸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물리적 장소로서의 고향은 그 자리에 있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던 따뜻한 고향은 사라져 다시는 갈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주인공이 느낀 상실과 절망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의 공통된 심경이 아닐까.
 
하지만 내 고향 용문은 달랐다. 떠난 지 60여년의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곳이었다. 각박한 서울 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쳐 가슴이 타들어갈 때면 언제나 고향을 찾았다. 그때마다 고향의 산과 들, 투박하지만 따뜻한 체온을 가진 고향 사람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나를 반기며 지친 심신을 토닥여주었다. 그러니 어찌 하루라도 고향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가끔 세상에서 고향이란 단어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상상해 볼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모정을 잃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누구에게도 차마 내 보일 수 없는 약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껴주고 감싸주는 자애로운 이가 세상에 어머니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고향을 어머니란 단어와 동의어로 보는 문학가들이 많은 것도 아마 그런 연유 때문 일 것이다. 그러니 고향이란 단어가 없어진다면 세상의 어머니란 존재도 사라지는 것이니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두려운 일은 없다.
 
물론 내 고향도 소설 속 주인공의 고향 마을처럼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상전벽해의 시간이 흐르면서 용문에도 적잖은 변화들이 생긴 것이다. 예천읍에는 상가 건물들이 들어서고 장마철이면 흙도랑으로 변하던 도로는 아스팔트로 바뀌고 밤이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던 뒷동산은 사라졌다. 어머니가 계절마다 배추와 상추와 고추와 파를 심던 터 밭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바람에 넘실거리던 청보리밭 풍경도, 여름 내내 동무들과 깨홀딱 벗고 자맥질을 하던 금곡천도 모두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변화의 순응에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자연의 이치이기에 달라진 고향의 모습에 적응하며 변함없는 애정으로 마음에 품어왔다. 비록 모습은 달라져도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과 벗들이 사는 땅이고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니 비난하고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팔순이 넘어 돌아온 고향은 여전히 크고 작은 변화 한 가운데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일과 너무 달라져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듯한 한적한 동네 풍경이다. 농번기에는 일손을 나누기 위해 모여든 이웃들로 북적거리던 복천 앞 들판은 사람대신 컨베이어 시스템, 이앙기, 트렉터, 지게차등 농기계들만 분주히 돌아간다. 모를 내리고 심는 일 부터 모두 기계가 도맡아하니 하루 종일 창 너머를 내다봐도 사람 그림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어쩌다 마실 나온 이를 만나도 듣는 귀가 부실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네들이 대부분이니 동네가 절간처럼 고요하다. 이제 명절날이나 되야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나 어린 아이들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이농 현상이 용문이라고 예외 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귀향 전에는 돌아 온 고향집 창 너머로 논일 나가는 이웃들과 부잡스런 이야기 나누며 하루를 소일하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창 너머 바라보이는 풍경은 인적이 드문 허허로운 텅 빈 들판과 하릴없이 나부끼는 허수아비뿐이다. 그 모습에 마음 적적하고 황망할 때가 적지 않다.
▲ 고향의 황금들판 / 어렸을 적 동네 일꾼들이 모여 벼베기를 하던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 고향의 황금들판 / 어렸을 적 동네 일꾼들이 모여 벼베기를 하던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바삐 살아온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때문인지 한동안 혼자 생활하는 일상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몇 달은 그렇게 깊은 우울감에 빠져 지냈다. 자나 깨나 그리던 고향이었건만 막상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그리던 모습과는 달랐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혼자 격리된 것 같은 고독감 때문에 괜스레 마음이 울적하고 서글펐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세상 모든 어려움과 역경도 웃으며 정면승부로 이겨낸 내가 아닌가.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 잡고 보니 젊은 날 고향을 떠나던 그 날이 떠올랐다. 꼭 성공해 돌아와 어머니가 나의 태를 묻은 고향집 마당에 뼈를 묻으리라 다짐했던 간절하고 뜨거운 그때 그 마음도 오롯이 되살아났다.
 
그렇다. 모두가 떠나면 어떠하리. 누구이든 고향은 다시 돌아 온 이가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고단하고 모진 세월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무조건 품어주고 다독여주는 부모의 사랑처럼 고향은 떠나간 이들의 그리움과 상처, 고단한 삶의 짐마저 다 감싸 안고 품어주는 영원한 쉼터 같은 곳이다.
 
내게 주어진 역할은 바로 이곳에서 먼 길 돌고 돌아 잠시 마음을 쉬어 갈 곳을 찾아오는 후배들을 위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일일 것이다. 그들 보다 먼저 거친 세상 속으로 뛰어든 인생의 선배로서, 또 같은 땅에서 나고 자라서 똑같은 장소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고향 선배로서 삶에 지친 인생 후배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 한마디 정도 건내며 작은 힘을 보태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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