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인재 양성 위해 일했던 총동창회장 (4화)
미래 인재 양성 위해 일했던 총동창회장 (4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7.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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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고향
어린 시절 나의 모교인 용문초등학교는 9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명칭이 바뀌었지만 내가 다닐 때는 ‘용문공립국민학교’라고 불렸다. 예로부터 예천군이 금천, 내성천, 낙동강이 감싸는 물의 도시라 불렸다면 용문면은 물이 풍부한 수덕지향(水德之鄕)의 땅이다. 이 용문면에 십승지에서 자주 거론되는 금당실 마을이 정좌(正坐)하고 있는데 모교인 용문초등학교는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금당실 오미봉 아래에서 부터 학교 앞까지 900여 그루의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시골 학교들이야 대부분 자연 속에 있으니 성장환경으로 따지자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자연 중에서 유구한 세월의 송림 숲 가운데 자리한 용문초등학교야 말로 최고의 교육환경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서 농촌의 학교들이 위기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용문초등학교 역시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처지라 각종 행사를 통해 학교의 발전기금을 모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과거에도 모교가 이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나를 위시해 학교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선후배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총동창회장직을 맡아 열심히 일했던 나의 지난 노력들과 성과들 덕분에 아직도 고향의 동창들과 향민들 사이에서 많은 인사를 받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더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용지회 회장으로서 많은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내자 선후배를 비롯한 많은 용문공립국민학교 동창들이 내게 총동창회장직까지 맡아줄 것을 요청해 왔다. 당시 직장과 영화계에서 내가 주어진 역할과 책임들이 점점 더 늘어 갈 무렵이었지만 여러 고민 없이 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른 일이라면 고민을 했겠으나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생각이다. 나 한사람의 이런 생각이 당장의 큰 도움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변화의 출발점을 가져 올 수는 있다고 믿었기에 크고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봉사해 왔다. 대단한 재산을 가진 형편은 아니었지만 용문과 모교 총동창회 발전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가 있으면 사비를 털어 개인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총동창회장 재임기간 동안 다양한 일들을 했지만 내 입장에서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기념사업은 역시 ‘용문을 빛낸 사람들’을 제정한 일이다. 1922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90년이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용문초등학교는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명망을 떨친 많은 학자들을 양성해낸 고장답게 그동안 사회 여러 분야의 수많은 우수 인재들을 배출해 냈다. 그렇게 모교의 이름을 빛낸 동문들과 선후배들을 격려하고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시상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용문초등학교의 명성을 널리 알려 왔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 예술, 학술, 산업, 교육 총 5개 부문에 걸쳐 후보들을 선정했다.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 선발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여고 당시 박완수(용문노인회장) 변병화(용문노인대학장) 김도영(예천신문사장) 홍갑주(용문면 전 면장) 황찬호(용문초등학교 교장) 박나영(용문면 면장) 김기현(법무사) 등 용문의 전, 현직 유지 분들이 수고해 주셨다.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사장에는 당시 용문초등하교 총동창회장인 나를 비롯해 박일순 수석부회장, 권창용 용대부회장 등이 입회하여 선정과정을 지켜보았다.
▲ 동창회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필자
▲ 동창회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필자

수많은 논의와 협의를 거쳐 마침내 최종 수상자를 선발하였다. 이 결과로 학술분야에 용문초등학교 제40회 졸업생인 변명우 박사가 선정됐다. 우리나라 방사선 식품 개척자로 알려진 변 박사는 국내 최초로 식품·공중보건제품에 활용하는 방사선 조사시설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등 식품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연구를 해 왔다. 방사선 기술(RT)과 타첨단기술 등을 융합해 공중보건용 신소재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인정받았던 분으로 방사선 식품 생명공학기술 개발과 관련해 국외 전문 학술지에 150 여 편의 논문을 게재한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귀한 인재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사회부문 수상자인 변우량 박사는 용문초등학교 제22회 졸업생으로 나의 1년 선배이자 친구 같은 막역한 분이다.

 
제9대, 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30여 년간 새마을 지도자 교육과 산업체 교육에 크게 헌신해 왔다. 용문의 발전에 앞장 선 용지회의 초대 멤버로 평택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학술연구와 후학양성에 헌신 했으며 재경예천군민회 회장 역임 등 나 못지않게 고향을 위해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용문인들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 장구한 세월 힘써 공헌해 왔다. 예술 부문 수상자인 권창륜 원장은 용문초등학교 제28회 졸업생으로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위원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 심사위원장을 역임하며 국내외로부터 대한민국 대표 서예가로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아 오신 분이다. 특히 고향 용문에 <예천서예체험관>과 <예천서예박물관>을 설립해 고향에서 예술분야의 우수한 제자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산업부문 수상자인 권영하 원장은 용문초등학교 제19회 졸업자로 한국 잠사에 관한 행정연구와 업계를 총괄하는 단체에서 40년 이상을 봉직하며 오직 한국 잠사와 견직 발전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외길 인생이었다. 잠사업이 눈부신 성장을 하던 1960년~1970년대에 농수산부 잠종국장으로서 잠사 증산과 수출확대를 위한 기획과 집행 그리고 여러 법령과 제도의 정립, 잠사류 가격정책 기초 확립을 위한 정책발의 등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한국 잠사업이 중흥을 맞기까지 큰 기여를 했다.
 
교육부문 수상자는 용문초등학교 제26회 졸업생인 강형 박사였다. 용원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초중고 교사 생활만 15년, 대학 교수로 재직한 기간만 25년이 넘는, 말 그대로 평생 교육계에 몸담고 전문 인력과 후학양성에 전념해 온 분이다. 또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중요 보직을 역임하며 대학교육 활성화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수의 논문과 저서 및 학회활동을 통해 한국 영문학 교육의 체계화와 영문학 발전에 크게 헌신해 왔다.
 
수상자로 선정된 다섯 분에 대한 시상은 2008년 5월4일 용문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렸다. 관내 기관단체장 및 용문, 용원, 용대 등 세 초등학교 동창회를 통합한 용문통합초등학교 총 동창회원들과 수상자및 가족, 주민 500여명이 참석해 고향에서 열린 뜻 깊은 행사를 즐기며 수상자들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전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회장의 자격으로 아래와 같은 인사를 남겼다.
 
“86년 동안 예와 효를 바탕으로 교육해 온 역사 깊은 모교의 훌륭한 인재 가운데 오늘 뜻 깊은 상을 수상하게 된 다섯 분에게 축하를 전하며 늘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후배들에게는 귀감이 되어주길 바란다. 오늘은 관계자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용문면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큰 잔치가 되었으면 한다.”
 
나의 축하 말처럼 수상자 다섯 분은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은 분들로 옛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이 적합한 분들이었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부족함 많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본인의 남다른 성실함과 노력으로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인재이자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세상이 변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탄생할 수 없는 시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국 교육계에 몸담아 온 한 사람으로서 교육 인프라가 발달된 도시에서 성장한 아이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과 본인의 의지가 삶의 성공과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난 날 총동창회장으로서의 내가 한 역할 또한 단순히 사회적 명성과 직업적 성공을 이룬 사람만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었다. 약점이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 인생의 승자를 찾아내 수상하고 후배들에게 귀감을 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부디 나의 이런 큰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 단순히 성공한 인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지 않고 진정한 인생의 승자를 키워내는데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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