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번호: 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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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신문
  • 승인 199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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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 : 명봉사 무량수전 낙성식 26일 봉행
호수번호 : 9930
내용 : 수령을 알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숲이 하늘을 뒤덮고 그 밑으로 뻗은 계곡이 수려한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
산사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풍경소리는 세속의 근심을 잊게 한다.
소백산 백운산 아래 자리잡은 명봉사(주지 희광스님)는 겨울이면 깊은 고요 속에 빠진다.

가끔 산사를 지키는 비구승의 독경소리만이 침묵을 깨고 낭랑한 울림으로 산 구석구석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경칩을 막 지나 잔설 속에 봄내음이 완연한 요즈음 명봉사에는 때 아닌 술렁임이 가득하다.

오는 26일 아미타 삼존불 점안불사 및 낙성식 봉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낙성식을 갖는 무량수전은 기존의 법당이 너무 오래돼 보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주지 희광스님과 불자들의 정성이 하나로 모여 이루어졌다.

큰 스님들, 관내 기관단체장, 불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자리와 행사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지스님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재물이 많고 적음을 떠나 병들고 지친 몸을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열린 공간, 차 한잔에 마음 속 근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같은 스님, 기도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 싶다는 희광스님.

작고 여린 몸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힘 없고 나약한 사람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그동안 교통이 불편해 산사를 찾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 매월 초하루에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시 30분 출발하는 봉고차를 운행한다.

불자들이 편안히 쉴 요사채를 한 동 짓고 절의 초입을 알리는 일주문을 세우는 게 남은 임기동안 꼭 이루고 싶은 염원이라고 말하는 희광스님의 얼굴에 염화미소가 어린다.

명봉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 두운 선사에 의해 창건됐다.
창건 당시 깊은 산중에서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렸다해서 명봉사라 이름 지어졌다.

경내에는 문종대왕태실비(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가 있으며, 절의 동북쪽에는 경청선원 자적선사 능운탑비(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호)가 있다.
이 비는 자적선사의 고매한 인격과 공적을 길이 전하고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당대의 학자 최언위가 지었다.
특히 비문 중에 이두문이 있어 국어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사적가치가 매우 높다.
이 외 부도 5층석탑(고려중기), 사적비 등이 있다.

명봉사는 한 때 1백여명의 수도승들이 기거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으나, 화재와 산사태로 인해 대부분이 매몰되고 6·25사변을 통해 완전히 소실됐다.

그 후 1952년 당시 주지 변도천 화상이 동료사 1동을 복원하여 거처하다 1955년 주지 서만준 화상이 법당 1동과 요사 1동을 건립하였고, 다시 1960년 명봉일대의 주민이 힘을 모아 내원암 터에 법당과 요사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지장도량, 몸 아픈 이의 쾌유를 기원하는 약사도량으로 이름 높은 명봉사는 현재 상리면 저수재의 용두휴게공원, 용문사, 오프로드경기장 등과 연계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백승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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