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나의 가족들_2 (8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나의 가족들_2 (8화)
  • 예천신문
  • 승인 2019.09.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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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가족
곤궁한 살림에 자식 넷 먹이고 입히느라 허리 펼 틈이 없이 고단하게 살았음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에게 큰 소리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전혀 다른 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혼인이란 인연을 통해 인생을 공유하고 살아내다 보면 마음 상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어쩌면 우리 형제들 모르는 새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다투셨던 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아우들이 보는 앞에서 만큼은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역정을 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를 귀히 여기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존경과 존중의 마음으로 대하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에 나 역시도 평생 안사람을 하대하거나 무시한 적은 없었다. 사는 동안 이런저런 문제로 부부 갈등의 시간도 보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어머니인 아내를 마음으로 존중하며 살아 왔다.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며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 문제로 인한 가족 간의 다툼이나 차마 인간의 행위라고 볼 수 없는 흉악한 범죄들이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 사는 일이 힘들어 그렇다고 하지만 정작 지금보다 더 빈곤하고 어려웠던 우리 세대는 오히려 가족 간의 정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뎌왔는데 가난 때문에 가족 간에 차마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무 계산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믿고 도움을 주는 존재가 가족 이외 누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사람이란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 아무 것도 모르는 낯선 존재로 다가올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아내 혹은 자식이 부모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 않는가.
 
“나에 대해 뭘 알아요? 아무 것도 몰라요”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말 할 때는 정말 상대가 나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하는 원망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나를 더 좀 더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호소일 것이다. 나도 직장 생활에 정신없고 영화 일로 매일같이 바쁘게 지낼 때는 자식이나 안사람의 감정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아이들은 나도 모르게 저희들끼리 자라고 어른이 되어 버렸다. 아내 역시 내가 곁에서 챙겨주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잘 지내게 되었고 형제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자신에 걸맞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 부모님과 아우와
 
한 때 모두가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들 각자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가끔 혼자 되묻고는 한다. 과연 살아오면서 가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혹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아닐까. 곰곰이 되돌아보니 우리나라 단편영화와 후배 영화인들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 주기위해 고군분투 하느라 정작 내 가족과 함께 할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이 찾아들었다.
 
‘아, 가족이라고 너무 안심했던가. 너무 편하게만 생각한 것은 아닌가’ 그런 깨달음에 이르자 잠시 아연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어느 시절 내 곁에는 큰집으로 양자 간 동생과 남매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모두 나처럼 속절없는 세월의 풍파를 맞아 훌쩍 나이를 먹고 늙어 버렸다. 그렇게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굳게 믿었던 가족 구성원들은 세월을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변해 간 가족들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가족 행사에서 전해 듣거나 이런 저런 자리에게 얻어들은 소식들이 전부였다. 힘이 넘치던 젊은 시절 내 스스로 그들 뒤를 챙기고 관심을 가져 이해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물론 선하디 선한 나의 큰아들 장낙후는 내가 애써온 시간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애씀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더 일찍 많이 품어주고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할 뿐이다. 다행이 서로간의 신뢰가 두터워 이렇다 할 문제는 생기지 않았으니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아버지로서 지아비로서 부족함이 많은 세월이었다. 그런 사람을 늘 보듬어주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따르고 지켜준 자녀들 모두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빚졌으나 그것을 반절이라도 갚고 떠날 수 가 있을런지. 이 책의 한 자리를 통해 깊은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나마 전하고 싶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문제는 서로가 각자의 생각이나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닮은꼴로 생기고 같은 피가 흐른다고 생각마저 같을 수는 없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진정한 가족애가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제대로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나 역시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내 가족들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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