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고 싶다"
"고향으로 가고 싶다"
  • 예천신문
  • 승인 2003.04.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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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은 무언가 조금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늘 농촌생활이 나의 마음 한켠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20살 가까이 정을 붙였던 고향마을과 부모님의 땀이 흠뻑 밴 농토가 있고 또 내 자신이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것도 얼마간의 영향력을 미쳤으리라. 그래서 농사는 아니라도 채소밭이라도 가꾸면서 농촌에서 유유자적하고 싶은 것이 만년에 대한 나의 꿈이다.

그런데 얼마전 고향친구로부터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여보게 이제 나이도 먹었고 귀향할 준비 겸 올해는 내 땅에 모심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 어떤가. 좀 도와주게”라고 했더니 대뜸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가. 지금 논을 휴경지로 묵히면 농사지어 도지 받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금이 나오는데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게…”라고 하면서 펄쩍 뛰는 것이었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우루과이라운드협정 때문에 매년 일정량의 쌀 수입을 의무적으로 해야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꼭 휴경까지 권장해야만 되는가?

농업기반은 한번 무너지면 원상복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해방 후 육지면과 밀가루의 수입으로 목화와 밀농사의 기반이 무너졌고 또 보리농사도 그 기반이 무너지고 말았다.
또 중국산 마늘·콩·깨 등의 수입으로 인하여 농업기반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식량자급률은 28%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음식물은 지천으로 남아돌고 있다.

아사자가 속출하는 북한의 경우 식량자급률이 40%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나마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수출상품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농사는 농사자체의 효과보다 농사외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우선 안보차원에서 식량의 자급자족은 기본이어야 한다. 또 농사로 인한 국토가꿈은 어느 조경사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논농사가 가진 강우량의 조절기능도 댐 기능 못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동포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용이 들더라도 북한에 쌀 보내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이는 재고쌀을 정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농촌도 살리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탈냉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퍼주기다 뭐다하는 비판도 있을 수 있으나 민족문제를 꼭 그렇게만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창고에 그득한 쌀은 보관경비만해도 수조원이나 든다고 한다. 5∼6년이나 묵은 쌀이 창고에 쌓여 사료로 전환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퍼주기로 시비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제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나 정략적인 발상이나 6·25의 연장선상에서 국민감정을 자극시키는 그런일은 자제되어야 한다. 남북간 균형된 경제발전과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없이는 통일을 운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6배의 경제력을 가진 서독이 그 많은 통일 비용을 치르고도 경제적 불균형 때문에 통일 이후 얼마나 큰 곤란을 겪었던가.
서독에서 동독에 고속도로를 만들어주고도 꼬박 꼬박 통행세를 낸다고 서독 국민들의 불만이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얼마나 비판했는가. 그런데 통일후 그 고속도로가 기여한 공은 돈으로는 계산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남북간에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경의선 철도연결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남북의 적대행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민족사의 물줄기가 바로 잡혀가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누가 뭐라 해도 창고에서 몇 년씩이나 묵어가는 쌀은 굶주린 북한 주민에게 퍼주기라도 해야한다. 그리고 우리 농민들은 열심히 쌀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서 농촌이 황폐화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일시적인 경제논리만 가지고 농업기반을 무너뜨린다면 우리에게 언젠가는 더 큰 문제가 오고야 말 것이다. 언제나 국제정세는 자국의 이해관계로 가변적이기 때문에 식량문제는 경제논리 보다는 자급자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폐일언하고 나는 고향농촌으로 내려가 도연명의 「동리채국화(東籬彩菊花) 유연견남산(攸然見南山)」을 음미하면서 유유자적하고 싶다.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김시우, 보문면 출생,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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