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고향곡
봄의 고향곡
  • 예천신문
  • 승인 2003.04.17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고향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 가는 곳마다 꽃의 향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봄의 교향곡’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화들짝 핀 목련화 그리고 노오란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와 조화를 이루어 고향의 봄은 더욱 정겹기만 하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나는 그 어른이 거처하시던 움막집을 깨끗이 손질해 놓고, 해마다 살아계실 때 가꾸시던 텃밭도 돌아보며 새 봄을 맞이하고 있다.
텃밭 구석구석 향나무, 대추나무, 홍매화, 배나무, 감나무, 주목나무, 사철나무 등 아버님의 손길이 닿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그 어른께서 살아 생전 우리에게 심어 주셨던 교훈들이, 떠나고 안 계신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힘이 되어주고 있을 줄이야….
시아버님은 누구보다 부지런하셨고, 근면 검소하셨으며, 정직과 바른 생활을 강조 하셨던 분이다.

그런 시아버님의 음성(후두암 수술로 마이크 소리)이 금방이라도 “잘 있었나? 가(아들)는 돈 많이 버나?” 하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밭을 일구었다.
아버님은 나무를 사랑하시어, 많은 묘목을 키워서 시장에 내어다 파시곤 하셨다.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에도 나무와 벗하시며 정성껏 키우시고 보람을 느끼셨던 그 어른의 `삶’은 묘목을 키우시면서 사랑과 진실 믿음을 느끼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2000년 1월 시아버님께선 의사로부터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주변을 정리하셨다.

병원에 입원 하신 동안 내가 간호하러 가면, 종이와 펜을 찾으셔서 농사 짓는 법을 너무나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나는 농사라고는 정말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지만, 시아버님의 사랑의 마음이 담긴 곳, 그리고 고향의 전원이 너무나 좋기에 봄이 오면 고향에 내려와서 밭을 일구어 씨앗을 넣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아들(내 남편)이 직장을 퇴직하고, 아버님께서 하시던 나무사랑을 하고 있다. 아직 자리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양재동에서 꽃, 화환 그리고 관엽, 서양난, 동양난 등 갖가지 식물을 취급하면서 아버님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아버님께서는 우리들을 지켜 보시며 “얘야, 감나무 눈에다 좋은 종자를 접목시켜 보아라, 아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단다” 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시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가장 좋은 유산은 바로 신앙이다.

어떤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신 아버님!
그리고 꽃과 나무에는 사랑, 진실, 행복, 기쁨 그리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이 있음을 아셨고, 그 안에 살아 숨쉬는 하느님의 숨결과 함께 호흡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시는 지혜의 어른이셨다.

이런 추억에 잠기는 동안 어느새 집 앞 텃밭을 다 일구어서 비닐을 씌우는데, 나의 모교 여고에서는 지금 마악 수업이 파했는지, 재잘재잘 소리가 들리고 학교 방송에서는 `봄의 교향악이…’ 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학교를 바라보면서 지난 여고시절 잔디밭에서 동무들과 노닐며 까르르 웃던 추억에 또 잠긴다.

<이은희, 에천읍 출생, 예천여고 13회,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