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관이 되려면…'
'목민관이 되려면…'
  • 예천신문
  • 승인 2021.07.16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시우 이사장(사) 율은 김저 선생기념사업회
◇ 김시우 이사장
(사) 율은 김저 선생기념사업회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자천, 타천의 후보자 이름이 지역신문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시장·군수를 조선시대에는 목민관(牧民官) 혹은 수령(守令)이라 하였다.
서울의 각 관아에 근무하는 관리를 경관(京官)이라 하는데 이들 경관과 목민관은 큰 차이가 있다.

경관은 맡은 바 임무에 국한해서 일처리만 잘하면 된다. 혹 잘못되어도 해당 업무에 한정될 뿐이다. 그러나 지방관인 수령은 지역의 민생을 챙기고 지역민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만가지 일을 직접 처리하는 자리이다.
민생을 돌보고 기른다는 뜻에서 목민관, 지역민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수령이라 하고 이들에게 붙여진 호칭은 관직명이 아닌 영감(令監)이었다.

조선시대에 뛰어난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이들이 꼭 알고 지켜야 할 목민의 경전(經典)이라 할 수 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남겼다. 한때 정부에서는 이 책을 공무원들의 필독 서적으로 권장하기도 했었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 받는 호지명(胡志明)이 이 책으로 공부를 하고 경륜을 쌓았다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다산이 이 책을 심서(心書)라 한 것은 목민할 마음은 있었지만 스스로 목민관이 되어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실서(實書)가 아닌 심서(心書)라 한 것이다. 다산은 이 책머리에서 다른 벼슬은 구해도 괜찮지만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수령은 한가지 재주나 품성이 좋은 것만으로도 부족하고, 덕이 있어도 위엄이 없으면 그 직을 제대로 수행 할 수 없다. 일을 처리하고 싶어도 지혜와 학식(행정력)이 밝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목민의 벼슬자리라고 했다.

특히 목민관은 상관(上官)으로서 본인보다 지역 사정과 업무에 더 밝은 아랫사람을 부리는 일이 일상사이기 때문에 넓은 정보력과 정확한 분석력이 있어야 한다.
위엄을 갖추려면 청렴이 전제되어야 하고 지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신의와 성실성이 돋보여야하고 또 수신제가(修身齊家)하고 공명정대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목민의 자리는 쉽게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어릴때부터 목민관이었던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을 따라 여러 고을에서 목민의 견문을 넓히었다. 정재원은 1780년 6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예천 고을 원으로도 재직하였다. 이때 정약용은 아버지를 따라 예천에 머물렀는데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그는 후에 예천을 추노지향(추(鄒)魯之鄕)이라 했다.
예천지역은 공맹사상이 투철하고 인의(仁義)와 효제(孝悌)에 밝다는 뜻일 것이다.

예천인들은 지금도 다산의 이 말에 매우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예천이 정녕 추노지향이 되려면 우선 예천고을 원은 수신제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렴, 믿음 그리고 공명정대함은 담보되어야 한다.
지역민을 위한 투철한 사명감과 목민관이 되어야 할 뚜렷한 명분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에 임하는 군민들의 지혜와 명석한 판단과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바라는 최선의 인물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도 없다면 차차선을 선택 하는 것이 선거이다.

국리민복으로 신뢰받는 정당도 없는데 덮어놓고 특정 정당후보에 몰표를 주는 그러한 선거풍토는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이제 유권자들이 바로 잡아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로서야 정당도 나라도 바로 설수 있기 때문에 이 투표에 임하는 주민들의 마음가짐은 냉철해야하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선거가 되어야한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뜻에서 푼수를 넘는 일임을 알면서도 독백의 한 토막으로 글을 올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