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가 그의 명저인 〈방법서설〉에 남긴 말이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 르네상스의 중심에 선 데카르트는 중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철학인 스콜라의 관념적인 사고방식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새로 눈뜨게 된 주아적 의식(主我的 意識), 즉 근대적 자아를 기점으로 하여 철학을 다시 만들어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워보려 했다.
〈방법서설〉 첫머리에 그는 ‘양식(良識)은 새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배분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양식은 이성(理性)을 의미하고 있으며, ‘올바르게 판단하고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힘’을 의미하며 이처럼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과학 분야에 있어서 진리를 탐구해 내는 방법’으로 이미 존재하는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단 의심과 재검토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작은 감각조차도 의심하여 믿지 않으려 했다.
이처럼 회의(懷疑)하다가 그가 도달한 결론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저였다. 즉 일체의 모든 것을 부정해도 그 부정하는 작용을 하는 자아만은 남아있다. 따라서 ‘생각하는 자아’만이 철학의 출발점이며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주장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고 불분명하다.
그 원인은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왜곡된 민의의 표출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분명 큰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충격적인 결과에 많은 사람이 침묵하고 있다.
왜곡된 민의의 첫째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 후보들이 90%에 달하는 몰표로 당선된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민의가 아니며 후세에까지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는 많은 문제점을 가진 후보 즉 파렴치한 전과와 과거 및 현재 불순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말한 사유하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셋째는 언론이나 집단의 비이성적인 여론형성으로 민의의 왜곡을 가져왔다. 따라서 많은 시민이 깊은 사유 없이 집단의 주장이나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자신의 소중한 참정권을 의미 없이 행사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전투표 제도를 시행하여 투표권의 신성함을 추락시키고 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제도는 반드시 폐지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해야 한다. 다수당의 힘이나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의 개인적 목적이나 목표에 따라 국정이 좌지우지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중우정치(衆愚政治)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그의 정치적 학설에 따르면 국가는 최고 종류의 사회라는 것이고 최고의 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국가의 목적은 사회유지를 위한 범죄방지를 위한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목적은 선한 생활이다’. ‘정치적인 사회란, 단지 자기 당끼리의 도당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행동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하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이상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 말의 근본 취지는 훼손될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수 결에 따라 움직인다. 고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 표시가 매우 중요하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인식하고 한표 한표 소중히 행사해야만 이 땅에 선과 고귀한 행동이 꽃 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