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의 미학(1)
주전자의 미학(1)
  • 예천신문
  • 승인 2003.10.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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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주전자라면 어떨까?
외형은 체질적으로 둥근 항아리지만 들이키는 입과 토하는 주둥이를 따로 가졌으니 어찌 항아리와 같다 할 수 있으리요?

입은 큼직한 원형이요 토하는 주둥이는 작으면서도 예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니 이것과 같은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옛날에는 주둥이가 길었는데 요즘은 세월 따라 유행을 타는 탓인지 짧고 굵은 모양의 주둥이로 변했습니다.

손잡이도 종래는 반달 모양의 반원형에서 직선형이나 경사선 형으로 변해 가는 모습인데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리네의 일상 생활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양의 미가 강직한 직선의 미라면 이에 반하여 동양의 미는 부드러운 곡선의 미라고 합니다.

직선의 미는 서양인들이 즐겨 입는 신사복과 서양식 건축물의 상징인 아파트나 계획된 도시의 거리에서 절도 있고 선명한 직각과 곧은 선의 산뜻한 아름다움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동양의 미는 곧 한국의 미요, 곡선의 아름다움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은 곡선에 있으며, 곡선의 아름다움은 오랜 정취를 자아내는 한옥의 기와 지붕이나 한복의 옷깃에서 풍겨 나옵니다.

한복의 소매 깃이나 동정의 완만한 선에서 우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듯이 주전자의 손잡이와 주둥이 입술과 몸통에서 곡선의 여유 있는 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나지 않고 둥글어 휘어질 줄 알면서도 꺾이지 않는 곡선 같은 지혜로운 삶은 우리 선조들이 많은 외침을 받아 왔으면서도 오늘의 한국이 있도록 가꾸는데 원동력이 되었으며,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은근과 끈기를 지니도록 하였습니다.

직선에서 날카로움을 느낀다면 완만한 곡선에서는 부드러움과 온유함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작은 선 하나에서도 동양의 미와 서양의 미를 찾아내듯이 주전자의 외형에서 한국의 아름다움과 그가 지닌 풍요로움과 인간들과 조화됨을 봅니다.
주전자의 내적 미는 어디 있을까?

사용하지 않을 땐 속이 빈 상태지만 누군가 필요로 할 때는 속을 가득 채워서 나타납니다. 속을 채웠다 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고 남을 생각지 않는 그런 몰염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때로는 물을 담기도 하고 술을 담기도 합니다.
물을 담았을 때는 우리네의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수가 되고, 술을 담았을 때는 우리네의 감정을 표출하도록 흥겨움을 안겨주는 낙흥제가 되기도 합니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라면 술은 생명체를 가진 사람들의 흥을 돋아 주는 즐거움의 샘이 됩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을 가진 것이 살수 없지만 흥이 없으면 살아 있는 생명체에 즐거움과 재미도 생활의 활력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애주가들은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물이 생명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듯이, 술도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미소와 화해를 안겨 주기도 하고 미움과 분쟁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전자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만 담기를 원치도 않고 흥을 돋우는 술만 담기를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 제4회 경찰문화대전 수필부문 동상 작

<최성규 경사, 서울남부경찰서 경무과, 개포면 우감2리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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